집안 산성하 고분군 ( )

고대사
유적
중국 지린성 집안시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 무덤군.
유적/고인돌·고분·능묘
양식
무덤군
건립 시기
삼국시대
관련 국가
고구려
소재지
중국 지린성
내용 요약

집안(集安) 산성하(山城下) 고분군(古墳群)은 중국 지린성 집안시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 무덤군이다. 약 1,850기의 무덤이 확인되었으며, 서기전 1세기~서기 3세기에 조성된 무기단적석총부터 4세기 이후 조성된 석실봉토분, 6~7세기 이후에 조성된 동실묘까지 여러 형식의 고구려고분이 확인되었다.

정의
중국 지린성 집안시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 무덤군.
위치와 입지

집안 산성하 고분군은 환도성으로 비정되는 산성자산성과 우산(禹山) 사이에서 북에서 남으로 곡류하는 통구하(通溝河)를 따라 형성된 무덤군이다. 집안마선구고분군, 집안칠성산고분군, 집안만보정고분군, 집안우산하고분군과 함께 통구분지 무덤군을 이룬다. 통구하의 좌우안 충적 대지에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집안만보정고분군과 구분하지 않고, 산성하만보정고분군이라는 하나의 무덤군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무덤군의 남쪽 경계는 국내성 북쪽에서 직선거리로 약 830m 떨어져 있으며, 무덤군의 서북쪽은 산성자산성의 남벽과 연해 있다. 무덤군의 동서 양쪽은 비교적 높고 경사가 급한 산지를 이루며, 통구하 주변은 해발 200m 내외의 저평한 충적 대지를 형성하고 있다. 무덤은 대체로 통구하 좌우 기슭의 평평한 충적 대지에 형성되어 있으나 일부는 우산의 서쪽 기슭에 분포한다.

규모

무덤군의 남북 길이는 약 3.4㎞이다. 1997년 조사에 따르면, 모두 약 1,850기가 확인되었다. 그중 약 600기는 망실되고, 현재 약 1,250기만이 남아 있다. 무덤의 형식으로 구분해 보면, 약 1,850기 가운데 주1이 약 570기, 주2이 약 110기, 동실묘(洞室墓)가 약 1,170기이다.

현재 남아 있는 약 1,250기의 무덤을 크기별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약 510기가 남아 있는 적석총의 경우, 긴 축 10m, 15m를 기준으로, 10m 미만의 소형은 약 165기, 10~15m의 중형은 약 210기, 15m 이상의 대형은 약 135기이다. 대형 가운데 25m 이상의 초대형은 약 20기이다. 석실봉토분의 경우 약 100기가 남아 있다. 10m 미만의 소형은 약 65기, 10~15m의 중형은 약 25기, 15m의 대형은 약 10기이다. 동실묘의 경우, 약 640기가 남아 있는데, 긴 축 5m 미만의 소형이 약 460기, 5m 이상의 대형이 약 180기이다.

통구분지의 초대형 적석총은 대체로 우산하고분군과 집안 산성하 고분군에 집중 분포하며, 대형분의 경우, 무기단적석총은 우산하고분군에, 기단적석총과 계단적석총은 집안 산성하 고분군에 가장 많이 분포한다.

우산하고분군에 비해서는 대형분의 비중이 낮고 중형과 소형 적석총의 비율이 높다. 계단적석총 가운데 왕릉으로 비정되기도 하는 산성하전창36호분과 절천정총(折天井塚), 형총(兄塚), 제총(弟塚) 등이 있고, 석실봉토분 가운데 미인총(美人塚), 귀갑총(龜甲塚), 연화총(蓮花塚), 왕자묘(王字墓) 등의 벽화분이 있다.

연대

고구려고분은 적석총-석실봉토분-동실묘의 순서로 조성되었다. 집안 산성하 고분군의 경우, 1997년에 조사된 약 570기의 적석총 가운데 서기전 1세기~서기 3세기 후반에 주로 조성되었던 무기단적석총이 약 85기이고, 2세기~5세기에 주로 조성된 기단적석총과 계단적석총이 각각 약 295기와 약 190기이다.

약 110기가 확인된 석실봉토분은 4세기 이후에 주로 조성되었고, 약 1,170기가 확인된 동실묘는 6~7세기부터 발해 시기까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동실묘의 경우, 발해 시기의 무덤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무덤의 형식과 규모, 분포 등을 고려하면, 집안 산성하 고분군은 우산하고분군과 칠성산고분군보다는 상대적으로 늦게 조성되기 시작하여, 고구려 후기와 발해 시기까지 묘역으로 사용되었다. 무덤군 내 지점별로 형식에 따른 분포 비율이 다르다는 점에서 미루어 보면, 지점에 따라 형성되는 시점에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산 서쪽 기슭의 특정 지점에 무기단적석총 위주의 무덤군이 먼저 조성된 후, 그 북쪽으로 통구하의 충적대지를 따라서 기단식 혹은 계단식 적석총이 축조되며 무덤군이 확장되었다. 이후에는 확장된 무덤군에 석실봉토분이 추가되었고, 마지막으로 무덤군 내의 빈 곳에 동실묘가 일정한 규칙성이 없이 조성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강현숙, 『고구려 고분 연구』(진인진, 2013)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集安市博物館, 『洞泃古墳群-1997年 調査測繪報告』(科學出版社, 2002)

논문

정호섭, 「고구려사의 전개와 고분의 변천 -국내성 시기 집안일대 고분의 통계분석과 GIS와의 비교를 중심으로-」(『韓國史學報』 59, 2015)
최종택, 「집안 통구분지 고구려 고분군의 조영 과정 연구」(『삼국시대 국가의 성장과 물질문화』 1,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5)
박순발, 「고구려의 도성과 묘역」(『한국고대사탐구』 12, 2012)
주석
주1

시신 위나 시신을 넣은 석곽(石槨) 위에 흙을 덮지 않고 돌을 쌓아 올린 무덤. 선사 시대부터 고구려ㆍ백제 초기에 나타난다.    우리말샘

주2

흙을 둥글게 쌓아 올려서 무덤을 만듦. 또는 그 무덤.    우리말샘

집필자
권순홍(경희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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