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사십이장경(佛說四十二章經)은 조선 전기, 속리산 법주사에서 목판에 새겨 인쇄한 불서이다. 이 불서(佛書)는 『사십이장경』, 『유교경』, 『위산경책』 등 불경 두 가지와 조사(祖師) 법어(法語) 한 가지를 합본한 책이다. ‘불조삼경’이라고도 부른다. 참선 수행자들이 새겨야 할 최소한의 불전(佛典)으로서 원나라 몽산화상 덕이가 이 세 책에 각각의 서문과 남송 선승인 대홍 수수의 주석을 더해 간행하면서 서문을 썼다. 이것이 고려 말에 전해져 간행된 것을 바탕으로 1569년(선조 2) 속리산 법주사에서 목판에 새겨 인쇄하였다.
『위산경책(潙山警策)』의 저자인 위산(潙山) 영우(靈祐, 771~853)는 백장(百丈) 회해(懷海)의 제자로서 위앙종(潙仰宗)의 개조(開祖)로 유명한 당나라의 선승(禪僧)이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유교경(遺敎經)』, 『위산경책』 등 세 책에 주석을 가한 남송(南宋) 선승인 대홍(大洪) 수수(守遂, 1072~1147)는 임제종(臨濟宗) · 위앙종 등과 더불어 중국의 선종(禪宗) 5가(五家)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조동종(曹洞宗)의 승려이다.
이 책에 서문을 쓴 몽산화상(蒙山和尙) 덕이(德異)는 남송 말기부터 원 초기까지 활동한 임제종 고승으로 고려와 조선의 선종에 큰 영향을 주었다.
목판에 새겨 닥종이에 인쇄한 뒤, 실로 꿰매 제본한 책이며, 책의 크기는 가로 17.6㎝, 세로 25㎝이다. 표지가 떨어져서 첫 장은 바로 몽산화상 덕이의 서문으로 시작한다. 글자는 크기를 두 가지로 달리하고 있는데, 세 불전의 서문과 본문은 큰 글씨로, 수수의 주석은 본문 밑에 작은 글씨를 두 줄로 새겨 배열하였다.
책 끝에 융경(隆慶) 3년[1569년]에 충청도 보은 속리산의 법주사(法住寺)에서 인쇄하였다는 것과 시주자, 각수(刻手) 등 책 제작에 동참한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몽산화상 덕이가 지원(至元) 병술(丙戌)[1286년]에 쓴 서문에 따르면, 『사십이장경』과 『유교경』, 『위산경책』 세 불서를 선가(禪家)에서는 ‘불조삼경(佛祖三經)’이라 부르며 의지하는데, 정산(靜山) 혜대사(慧大師)가 장쑤성[江蘇省] 오중(吳中)의 휴휴암(休休庵)에서 이를 인쇄하는 불사를 주도하므로 찬탄하며 글을 쓴다고 하였다.
책 전체를 살펴보면 몽산화상 덕이의 서문으로 시작하여 『불설사십이장경』과 수수의 주석- “몽산화상법어약록(蒙山和尙法語略錄)” - “대송진종황제주유교경(大宋眞宗皇帝注遺敎經)” - 『불유교경(佛遺教經)』과 수수의 주석 - “주위산경책서(注溈山警策序)” - 『위산경책』과 수수의 주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불설사십이장경』은 중국에 처음으로 전해진 불교 경전으로서 주로 출가 수행자의 자세에 대한 석존(釋尊)의 훈계를 짤막한 42구절로 편집한 것이다.
“몽산화상법어약록”은 한 페이지 남짓한 짧은 분량인데, 이 제목으로 간행된 단독 저서나 몽산화상의 다른 법어(法語)와 같은 구절이 없다. 추측컨대 몽산화상 덕이의 어록에서 무자(無字) 화두(話頭) 참구법(參究法)을 추출하여 약설한 것으로 보인다. 글자도 수수의 주석처럼 크기가 작다.
“대송진종황제주유교경”은 송나라 때 『유교경』을 출판하면서 진종(眞宗)이 직접 쓴 서문이다.
『불유교경』은 『불수반열반약설교계경(佛垂般涅槃略說教誡經)』, 보통 『유교경』이라 부르는 짤막한 경전으로서 석존이 입적하기 직전 계를 잘 지키며 수행에 매진할 것을 당부한 내용이다.
“주위산경책서”는 남송 때 고위 관리인 장수(張銖)가 쓴 서문이고, 『위산경책』은 위산 영우 선사(禪師)가 수행에 해이해진 제자들을 경책(輕責)하기 위해 쓴 책이다. 『위산대원선사경책(潙山大圓禪師警策)』이라고도 불린다.
세 가지 불서는 모두 내용이 짧으며 계를 잘 지키고 방일하지 말라는 경계를 담고 있어서, 문자에 의지하지 않는 참선 수행자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불전이라 할 수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국가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2020년 3월 6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