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제승법수』는 1384년(우왕 10) 행심(行深)이 명(明)나라 태조의 명을 받아 편찬하였다.
『현수제승법수』의 현전하는 1500년(연산군 6) 판본에는 12종류가 있어서 내용의 편차가 있다. 말미에 ‘등곡(燈谷)의 발문’이 있는 판본은 78장본이고, 발문이 없는 판본은 41장본이다. 또한, 같은 78장본도 표지 글자체가 다르다.
‘제승법수(諸乘法數)’라고만 되어 있는 판본은 원각사 도서이다. 원각사 도서는 「현수제승법수서賢首諸乘法數序)」 첫 번째 장(張)은 떨어져 있고, 이어서 같은 장 좌면(左面)이 중복되어 장정(裝幀)되어 있다. 한편 78장본은 『현수제승법수』 뒤에 「팔식심왕제문과간(八識心王諸門科簡)」이 부록(附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김해 묘련사 『현수제승법수』는 78장본(윗면 여백이 많음)이고 온전히 편집되어 있다. 표지에 ‘諸乘法數 全(제승법수 전)’이라 되어 있다. 목판본으로 11권 1책(78장)이다.
78장의 장차(張次)는 “① 현수제승법수서(賢首諸乘法數序): 제12장, ② 중편현수법수서(重編賢首法數序): 제3장, ③ 기교불조(起敎佛祖): 제45장, ④ 현수제승법수(賢首諸乘法數): 제669장, ⑤ 팔식심왕제문과간(八識心王諸門科簡): 제7076장, ⑥ 발(跋): 제77장, ⑦ 시주질(施主秩): 제7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광곽(匡郭) 형태는 사주쌍변(四周雙邊)[사주단변(四周單邊)이 다수 혼입]으로 반곽(半郭)은 세로 18.2㎝, 가로 13.7㎝의 크기이다. 판심의 위아래에 대흑구(大黑口)가 있고, 어미(魚尾)는 위아래로 흑어미(黑魚尾)가 내향(內向)하고 있다.
계선(界線)은 없으며 행자수는 일정하지 않으나, 서(序)와 중편서(重編序)는 12행 20자, 본문 일부는 10행 19자이다. 책의 크기는 세로 22.7㎝, 가로 16.6㎝(원래 크기, 세로 27.2㎝, 가로 18.2㎝)이다. 책의 위아래 약 3㎝ 정도를 최근에 잘라 낸 듯하다.
국내의 발간 경위는 등곡의 발문을 통해 알 수 있다. 등곡이 성화(成化) 연간(1465~1487)에 중국본을 우연히 구하여 편리하게 보던 중 도인(道人) 경민(冏敏)이 법수(法數)를 간행하고자 청하여 이에 포쇄(曝曬)하고 번각할 수 있도록 보내 주었다고 한다.
1500년에 경상도 합천 가야산 봉서사(鳳栖寺)에서 처음으로 개판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번각본(飜刻本)이 간행되었다. 따라서 이 책은 중국책을 복각하여 지금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다.
번각본은 1673년(현종 14) 간월사에서 목판본으로 발간하였고, 1942년에는 교정 · 증보하여 신연활자본(新鉛活字本)으로 『증보 현수제승법수(增補 賢首諸乘法數)』를 발간하였고, 1960년에는 해인사에서 목판본으로 발간하였다.
『현수제승법수』의 편제는 서문과 석가여래의 역대 조상의 왕계도(王系圖)를 그린 기교불조(起敎佛祖)와 제2권이 표시되지 않은 11권의 법수와 말미에 승려[沙門] 본승(本勝)이 지은 법수를 찬양하는 4자의 정형시인 명(銘)과 이를 다시 높여 쓴 칠언절구(七言絶句)로 구성되었다.
끝에 부록 격으로 팔식(八識), 심왕(心王), 제문(諸門), 요간(料簡) 등 법문과는 상관이 없으나 알아 두어야 할 숫자와 중국 문화권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주역(周易)의 팔괘(八卦)와 백이(伯夷) · 숙제(叔齊) 등 중국 칠현(七賢), 구주(九州), 칠정(七情) 등을 등재하였다.
서문은 2편인데, 「현수제승법수서」와 「중편현수법수서」이다. 「현수제승법수서」는 1427년(세종 9)에 쓰인 작자 미상의 서문이다.
책말에는 홍치 13년(경신년)에 해당하는 1500년에 경상도 합천지 가야산 봉서사에서 개판하였음을 알려 주는 해인사 승려 등곡의 발문〔夫法海汪洋窮之… 弘治十三年庚申自恣月海印寺老衲燈谷跋〕이 실려 있다.
『현수제승법수』는 불교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법수(法數)를 숫자의 차례대로 배열하여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일종의 불교사전의 성격을 가진 불서이다. 이 책은 1500년이라는 명확한 간행 시기와 가야산 봉서사라는 간행 장소, 그리고 시주자들이 분명하게 수록되어 있다.
1500년 간행본 중에서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결락이 없고 제대로 된 장차로 구성되어 있다. 국가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 8월 1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