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泗川) 백천사(白泉寺)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詳校正本慈悲道場懺法)』은 고려 후기인 14세기에 목판본으로 발간한 『자비도량참법』 관련 불교 수행의례집이다. 이 책은 양나라 진관 등이 집찬한 『자비도량참법』을 광균이 재교정한 것을 고려 때 수입하여 발간한 수행의례집이다. 이 판본은 간기가 없지만 고려 태조, 정종, 선종, 목종의 고려 4왕의 휘자를 결획(缺劃)한 점과 서문을 쓴 강전의 관작(官作)과 광균의 교감 음의(音義)와 함께 판식, 판각 특징을 고려하면 송본(宋本)을 저본으로 14세기 초 고려에서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양(梁)나라 진관(眞觀) 등이 집찬(集撰)하였으며, 광균(廣鈞)이 다시 상세히 교정하였다.
사천 백천사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은 2권 1책의 선장(線裝)으로 된 목판본이다. 각장은 5행 13자, 주쌍행(註雙行)이고 크기는 세로 30.9㎝, 가로 17.2㎝이다. 지질은 저지(楮紙)이며, 과거칠불(過去七佛)의 변상도(變相圖)가 들어 있다.
장차(張次)는 1장 4면으로 모두 225면이다. 변상도 4면, 서문 6면, 권제1 117면, 「자비참법석문(慈悲懺法釋文)」 2면, 제1권 음의(音義) 4면, 권제2 90면, 제2권 음의 2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지는 묵서로 '자비참법권제일지이(慈悲懺法卷第一之二)'라고 되어 있다. 첫머리에 「대자비도량참법변상도(大慈悲道場懺法變相圖)」가 과거칠불(過去七佛)로 되어 있어서, ‘양무참법(梁武懺法)’의 표지에 지장보살도와 불 · 보살변상도가 들어간 1352년 간행의 성보문화재단 도서(보물)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권1~3)과도 차이가 있다.
이 본은 1474년(성종 5) 간행의 동국대학교 도서(권1~2)인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의 변상도와 유사하지만, 부처님의 수인(手印)과 문양의 미세 부분에 있어서 또한 차이가 있다.
권수제(卷首題)는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詳校正本慈悲道場懺法)’으로 되어 있어서, 상세한 교정을 거친[詳校] 정본(正本)의 『자비도량참법』임을 알 수 있다.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의 판본은 고려시대 목판본 2본, 조선시대 목판본 10여 본이 있는데 모두 낱권본이고, 백천사 12권본(1책)과 같은 12권본으로는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본(1474년)이 있다.
이 책의 편찬 내력은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서(詳校正本慈悲道場懴法序)」와 「자비참법석문(慈悲懺法釋文)」에 나타나 있다.
『자비도량참법』은 원래 양나라 무제의 2자인 경릉왕(竟陵王, 소자량)이 꿈에 천왕여래의 정주정행법문(淨住淨行法門)을 듣고 『정주자』 21편을 30권으로 찬집하였는데, 양 무제가 이 참법의 육근문(六根門)에 의하여 진관(眞觀) 등 제사(諸師)들에게 『자비도량참법』 10권으로 편찬하게 하여 세상에 성행하게 되었다.
그 후 청량산 사문 광균은 조정의 관리에게 서문을 짓게 하고, 지방관료에게 참법(懺法)의 잘잘못을 가리게 하였는데, 자신은 7년간(997~1004) 잘못된 부분을 교감하고 문장을 다듬어 10권을 분명히 해석할 수 있었다.
이 10권본에 자신이 이미 지은 초문(鈔文, 『私鈔』 3권)에서 음의를 간략히 뽑아서 첨부하여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을 만들게 되었다(권제1말 「자비참법석문」).
여기서 서문을 짓게 한 것은 경덕 원년인 1004년(목종 7)에 강전(康戩)의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서」를 지은 것을 가리킨다. 이 간행본이 고려에 전해져서 간행되었고, 조선시대에 와서도 고려본의 초간본 혹은 중간본으로 간행되었다. 사천 백천사 도서는 그 10권 중 1~2권이다.
『자비도량참법』 10권은 망자(亡子)로 하여금 악업과 죄업을 참회하고 추선공양하여 극락으로 인도하는 수행의례집이다. 대략 세 부분으로 나누어 1 · 2권은 먼저 몇 편의 서문들이 들어 있고, 본문의 본격적인 참법은 귀의삼보로부터 발회향심까지 예참편이라고 할 수 있다.
3권부터 6권까지는 과보를 드러내고 원결(怨結)을 푸는 현과보(顯果報) 등을 설하며, 7권부터 10권까지는 참법으로 업보를 해결하여 그 기쁨을 나누는 의례로 자경(自慶), 육도를 위한 예불, 회향, 발원, 촉루로 구성되었다.
이 책의 권1 · 2는 변상도와 서문 및 본문의 참법, 그리고 음의가 첨부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이 책 앞표지의 이면(裏面)에는 “참경칙(懴經則) / 나무 오자시적미륵존불(南無 奧慈示寂彌勒尊佛) / 나무 시멸도생석가모니불(南無 示滅度生釋迦牟尼佛) / 나무 문수보현대보살(南無 文殊普賢大菩薩) / 나무 무변신관세음보살(南無 無邊身觀世音菩薩) / 나무 용화회상불보살(南無 龍華會上佛菩薩)”이라는 목판본과는 다른 묵서가 가필되어 있어서 본서의 내용이라고 볼 수 없다.
이 책의 전 2권은 총 여덟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앞장에 ① 변상도(1장 4면)는 「대자비도량참법변상도」로 과거칠불의 변상도이다.
②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서」는 조산대부행상서병부원외랑(朝散大夫行尙書兵部員外郞) 강전의 서술[康戩 述]이다(3장 6면, 제7∼8면은 낙장). 강전은 이 서문을 경덕 기원(景德 紀元 1004년)에 지었다.
③ 권제1 본문(제1장 1면∼제30장 1면)은 귀의삼보 제1, 단의(斷疑) 제2, 참회 제3까지이다. ‘자비도량’ 4자(字)를 세운 것이 꿈에 감한 것임을 밝히고〔立此慈悲道場四字乃因夢感〕, 이 참법이 양나라 때 제 법사들이 집찬했음을 밝히고 있다.
④ 「자비참법석문」(제30장 2∼3면)에는 청량산사문 광균(廣鈞)의 술문(述文)이 있어서 이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이 재교정되어 나온 내력을 밝히고 있다. 동국대학교 도서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에는 강전의 ‘참법서’ 다음에 나온다.
⑤ 서문 음의(序文 音義, 제30장 4면), ⑥ 권제1 음의(제31장 1∼4면), ⑦ 권제2 본문(제1장 1면∼제23장 3면)에는 제1권의 본문에 발보리심 제4, 발원 제5, 발회향심 제6까지이다. ⑧ 권제2 음의(제23장 3∼4면)가 맨 끝에 있다.
본문은 구독점(句讀點)이 있고, 묵서의 구결(口訣)이 있으며, 행간과 난상(欄上)에 일부 묵서가 기입되어 있다.
이 판본에는 간기가 없지만, 그동안의 불경 서지학 연구 성과로 미루어 14세기 초 고려에서 간행되었을 것으로 여기고 있다.
먼저, 이 책의 서문과 본문에는 고려 4왕에 대해서 결획(缺劃) 현상이 보이고 있다. 고려 태조(918943)의 휘자 건(建)과 제3대 정종의 겸피자 교(翹)의 12획과 제7대 목종의 휘자 송(誦), 제13대 선종(10831094)의 휘자 운(運) 자의 마지막 획을 결획하여 표기하고 있어서 이 판본이 1095년(헌종 1) 이후 간행본임을 추정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 책의 지질과 종이 두께 등 서지 정보들을 통하여 살펴보면, 고려시대 14세기 종이뜨기는 ‘0.06㎜’의 얇으면서도 질긴 홑장 종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고려시대인 12세기부터 14세기의 종이뜨기와 같다. 종이의 발촉수를 보면 ‘17촉’이고 발끈폭은 ‘2.5㎝’로 측정되는데, 이는 고려시대에 사용한
종이의 발촉수이고, 조선시대의 종이와는 다른 수치이다. 게다가 ‘2.5㎝’의 발끈폭은 백천사 도서 『 육조단경(六祖壇經)』(간기 1300년)과 같아서 이 본이 14세기 초에 제작된 종이로 인쇄되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이 책의 변상도와 본문 및 주문(註文), 변상도의 문양이나 본문의 크고 작은 글자와 인출된 글자, 변상도 그림의 상태로 볼 때, 이 본은 마멸되지 않은 목판본으로 인출한 것처럼 깨끗하다. 따라서 이 책은 목판을 판각하고 난 후 바로 인쇄한 초쇄본(初刷本)일 가능성이 깊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그 표지와 제첨 및 장책(粧冊)의 황사(黃絲) 등을 보면, 이 책은 인쇄하고 처음 제책(製冊)할 당시의 온전한 상태라고 판명된다. 따라서 이 책은 인출 당시 원형을 그대로 잘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크다. 국가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8년 6월 21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