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A 원조는 1955년 이후 미국이 국제협조처(ICA)를 통해 한국에 제공한 경제 원조이다. 군사 원조와 구호 원조 중심으로 제공된 한국전쟁이 종결되자 한국군의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경제 원조가 중요해졌는데, 상호안전보장본부를 통해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1953년 8월에 대외활동본부를 신설했고, 1955년 7월에는 대외활동본부를 대신하여 국제협조처를 설립하였다. ICA 원조는 방위지원의 성격이 강해 비계획 원조 중심으로 도입되어 삼백공업이 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한국전쟁기 동안에 미국의 대한 원조는 군사 원조와 구호 원조를 제공하였지만, 한국전쟁이 종결되면서 이런 미국의 대한 원조 정책은 변경되어야 했다. 전쟁이 종결되었지만 여전히 휴전 상태여서 한국군의 군사력을 유지해야 했을 뿐 아니라 전쟁으로 파괴된 산업시설, 공공시설, 일반 주택 등의 복구와 재건도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이와 같이 변화된 상황에 맞게 미국의 원조 정책을 변경해야 했고, 그 대표적인 원조가 국제협조처(ICA) 원조였다.
미국의 대외 원조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질적으로 변화했다. 한국전쟁 이전에 경제 원조는 1948년 제정된 대외원조법에 의해, 군사원조는 1949년에 제정된 상호방위원조법에 의해, 기술 원조는 1950년에 제정된 국제개발법에 의해 운영, 관리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계기로 냉전이 열전으로 전환하면서 미국 정부는 경제 원조, 군사 원조, 기술 원조를 각각 독립적으로 관리하기보다는 통합 관리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판단하여 1951년 10월 10일에 미 공법 제165호로 상호안전보장법을 제정하였고, 이에 근거하여 상호안전보장본부(MSA)를 설치하였다.
이 상호안전보장법 하에서 경제 원조는 상호안전보장본부, 군사 원조는 육군성, 기술 원조는 국무부가 공급하고 상호안전보장본부가 이들 원조를 전체적으로 조정, 관리하도록 계획했으나 한국전쟁의 지속으로 미국의 원조는 군사 원조와 구호 원조 중심으로 제공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종결되자 군사 원조 못지 않게 전쟁으로 파괴된 산업 시설의 재건, 민생의 안정이 중요해져 경제 원조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지만, 기존의 원조 기구와 원조 방식으로는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어 1953년 8월 1일에 상호안전보장본부를 폐지하고 대외활동본부(FOA)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대외 정책을 관장하고 있는 국무부와 대외활동본부와의 조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1955년 7월 1일에 국무부 내의 반독립적인 기관으로 ICA를 설립하고 경제 원조를 포함한 비군사원조 일체를 국제협조처에서 관장하게 하였다.
이와 같이 ICA 원조는 미국의 원조 기구인 국제협조처를 통해 제공된 경제 원조 및 기술 원조를 말하지만, 그 업무 범위나 기능의 면에서 국제협조처와 대외활동본부는 차이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1950년대 경제 원조를 연구하는 일부 연구자들은 FOA 원조와 ICA 원조를 구분하지 않고 ICA 원조로 통합하여 같이 다루는 경우가 종종 있다.
ICA 원조는 경제 원조이지만 ‘방위지원’의 성격이 강해 전쟁 이후의 한국 경제의 부흥이나 개발보다 한국군의 군사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경제 능력을 갖추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따라서 ICA 원조는 ‘계획 원조’보다는 ‘비계획 원조’ 중심으로, 다시 말하면 전자와 후자의 비율이 3대 7로 원조 물자가 도입되었고, 이 결과 1950년대 한국 경제에서 삼백공업으로 불리는 소비재 산업이 발달한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