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적으로 바터제는 화폐 경제가 발달하지 않은 근대 이전 시기에 상품과 상품이 직접 교환되는 국내의 거래 방식을 의미하지만, 상품과 상품이 교환되는 수출과 수입 무역에도 의미를 확장하여 적용한 것이 바터무역이다. 근대 이후에도 바터무역이 이루어지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한국에서 이러한 바터무역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시기는 미군정기였다.
미군정기 대외 무역의 특징은 두 가지였다. 첫째, 통제무역을 실시하였다. 일본에서 자본과 기술이 도입되어 성장했던 식민지 한국 경제가 해방과 함께 일본과의 경제 관계가 단절되고, 게다가 남한과 북한의 거래가 제한되면서 국내 생산 활동은 급격히 위축되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생활 안정에 필요한 생활 필수품의 공급을 위해서나 기업들의 생산 활동 재개에 필요한 원료 및 중간재의 공급을 위해 대외 무역의 필요성은 증대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군정은 1946년 1월 3일에 군정법령 제39호 ‘대외무역규칙’을 공포하여, 일본 경제와의 단절을 위해 해방 이후 금지시켰던 대외 무역을 재개했지만, 정부 승인하에 이루어지는 통제무역을 천명하였다. 미군정이 통제무역을 대외 무역의 기조로 삼은 이유는 국내 수요에 비해 국내 생산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국내 생산물자가 해외로 빠져 나가는 것을 통제하기 위함과 외환이 부족한 상황에서 대외 무역을 관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둘째, 바터무역을 실시하였다. 대외무역이 원활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대외 결제 수단으로써 외환, 즉 달러를 어느 정도라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일본과의 대외 무역이 거의 80% 정도를 차지했던 식민지기의 대외 무역에 규정되어 해방 이후 한국 경제는 달러를 거의 보유하지 못했다. 나머지 다른 나라와의 무역도 대부분 일본 경제권에 포함된 국가여서 일본은행권(엔화) 이외의 외환을 보유할 유인이 없었다. 게다가 미군정기에는 생산이 급격히 위축되어 외환을 벌어들일 수출 상품도 거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외 무역은 외환을 매개하지 않은 바터무역 형태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미군정기 바터무역의 특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외국 무역업자 주도로 무역이 이루어졌다. 이것은 대외 무역의 경험이 풍부한 국내 무역업자가 적었다는 점 이외에도 선박 등과 같이 무역에 필요한 제반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아 외국 무역업자가 수입품을 싣고 와서 한국의 중개인을 통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다른 하나는 한국의 수출품과 직접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원화(圓貨)로 판매한 이후 일정 기간 이내에 그 원화로 한국의 상품을 구매하여 외국으로 가져가는 것(수출)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외국 무역업자가 주도하여 이루어지는 미군정기 무역을 ‘피동무역’이라고 불렀다.
통상 바터무역은, 외환을 매개하지 않고 수출과 수입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구상무역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52년 5월에 구상무역제도(상공부 공고 제48호)를 도입하여 일시적으로 실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때에는 특정 국가에서 상품을 수입하기 위해서는 그 국가에서의 수입액에 상당하는 수출이 있어야 가능했다는 점에서 수출을 촉진하고 무역 수지를 균형시키고자 하는 목적하에서 도입된 제도여서 미군정기의 바터무역과는 성격이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