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구는 1973년 삼성전자에서 상무로 시작하여 2000년까지 삼성그룹 전문 경영인으로 활약한 기업인이다. 삼성그룹의 전자·전기 분야 3사(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전관)의 최고 경영자로 뛰어난 업적을 내었다. 특히 197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전자 업계 후발 주자였던 삼성전자를 맡아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장본인이었다. 아울러 한국전자공업진흥 회장, 전자산업진흥 회장, 전자부품 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봉사함으로써, 명실공히 한국 전자업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강진구는 1927년 경상북도 영주시에서 태어났고, 1948년 서울대학교 공대에 입학해 전기통신공학을 전공했다. 한국전쟁 발발로 포병 부대 통역 장교로 임관, 5년간 복무하였다. 이때 미군 장교들과의 교류를 통해 영어에 능통하게 된다. 전역 후 첫 직장은 한국 최초의 TV 방송국이었던 대한방송(DBC)이었다. 이후 미8군 방송국인 AFKN 기술 담당, 1962년 KBS 기술과를 거쳐, 1963년 새로 개국한 동양방송(TBC)의 기술 부장으로 입사하였다. 동양방송 입사는 삼성그룹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된다.
강진구는 동양방송 기술 부장 시절, 그간의 축적된 경험을 살려 방송 송출 설비 등 기자재를 자체 제작하는 등의 수완을 발휘했다. 이로 인해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눈에 띄어 1973년 삼성전자 상무 이사로 들어갔고, 1974년 대표 이사 사장이 되었다. 이후 설립 후 적자가 지속되던 삼성전자를 단기간에 흑자로 전환하고,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00년 삼성전기 회장을 마지막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20여 년간 삼성그룹 전문 경영인으로 활약하였다.
강진구가 1973년 상무 이사로 삼성전자에 들어갔을 당시 가전 업계는 금성사(현, LG전자)가 업계 선두였고, 대한전선(나중에 대우그룹에 매각)과 삼성전자가 뒤를 따르는 구도였다. 그러나 그가 1974년 대표 이사를 맡은 이후 삼성전자는 국내 기술로 만든 첫 컬러 TV인 이코노 컬러 TV 출시, 전자레인지 · VTR의 국내 최초 개발과 수출 등을 통해 금성사를 제치고 가전 업계 1위로 올라선다.
강진구는 1980년대에는 삼성의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였다. 1982년에는 삼성반도체통신 사장이 되어 메모리 반도체 개발과 생산을 책임지게 되었다. 그는 150명의 우수 사원으로 신규 사업팀을 조직하여, 당시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많은 수요를 가진 64K D램의 개발에 몰두했고, 1년 만인 1983년 개발에 성공하였다. 이는 한국 최초의 메모리 반도체 개발이었다. 여세를 몰아 1984년 256K D램 개발, 1986년 1M D램, 1988년 4M D램, 1989년 16M D램, 그리고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하여 기존 미국, 일본 등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따라잡았음은 물론 이를 능가하는 데 성공하였다. 1988년 삼성반도체가 삼성전자에 통합되면서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승진했고, 1990년 삼성전자 회장으로까지 승진해 삼성그룹의 전자 · 전기 분야 3사(삼성전자 · 삼성전기 · 삼성전관)를 지휘했다. 1990년대에는 삼성전자 대표 이사 회장으로 휴대 전화 사업에 몰두하였다. 그는 CDMA(부호분할다중접속)와 미국과 유럽이 장악한 TDMA(시분할다중접속)로 의견이 갈릴 때 기술 자립을 도모할 수 있는 CDMA로 방향을 잡아 지금의 삼성 스마트폰 시대를 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강진구는 197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전자 업계 후발 주자였던 삼성전자를 가전, 반도체, 휴대 전화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장본인이었다. 특히 오늘날 메모리 반도체와 휴대 전화에서 세계 최대의 생산 기업인 삼성전자를 만드는데 초석을 다진 것이 그의 가장 큰 업적이다.
강진구는 삼성그룹의 전기전자 사업 부분의 전문 경영인이었지만, 한국 전자산업의 얼굴로도 활동하였다. 한국전자공업진흥 회장, 전자산업진흥 회장, 전자부품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봉사했다. 2006년에는 서울대와 한국공학한림원이 선정한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에 선정되었다. 금탑 산업 훈장, 정보 통신 대상, 장영실 과학 문화상, 벨기에 그랑그로스 왕관 훈장, 포르투갈 산업 보국 훈장 등 그의 공적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정받았다. 그는 명실공히 한국 전자업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