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송천사지 회은장노비(光陽 松川寺址 悔隱長老碑)
15세에 출가하여 옥섬(玉暹)에게서 구족계를 받고 뒤에 소용 · 호연 · 벽암 등 중장의 제자가 되었다. 1633년에 입암성장(笠岩城將)이 되고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의승 벽암을 따라 전공을 세워 다음 해 양호도총섭(兩湖都摠攝)에 임명되었다. 1647년에는 팔방도총섭(八方都摠攝)이 되어 남한산성에 머무르며 많은 공을 세웠다. 1651년에 남옹성(南甕城)을 쌓은 공으로 가의(嘉義)로 승급되었으며 1660년에 자헌(慈憲), 1663년에 정헌(正憲)으로 승진되었고 1672년에 86세로 입적하였다. - 「광양 송천사지 회은장로비의 교감과 역주」(이계표, 『전남문화재』10집, 전라남도, 1998) - 「광양군의 불교문화유적」(최인선, 『광양군의 문화유적』, 순천대학교박물관·광양군,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