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구지(久之), 호는 입재(立齋)이다. 춘양(현 경상북도 봉화군) 출신으로, 아버지는 강우(姜鄅)이며,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로 이세준(李世俊)의 딸이다.
7세 때 『십구사략(十九史略)』을 배우는데 십여 장을 보고 그 뜻을 알았다. 어려서는 윤증(尹拯)의 문인인 큰아버지 강찬(姜酇) 밑에서 수학하다가, 1709년(숙종 35)에 직접 윤증의 문인이 되었다. 윤증 사후에는 윤동원(尹東源)을 스승처럼 모셨고, 권구(權絿) · 신익황(申益惶)‧윤광소(尹光紹) 등과 교유하였다. 이처럼 소론의 학통과 인맥을 이었으나, 집안이 병자호란(丙子胡亂)을 계기로 영남지방으로 이주한 까닭에 남인들과도 꾸준하게 교류하는 등 비교적 학문적으로 개방된 입장을 취했다.
1737년(영조 13) 조현명(趙顯命)의 천거로 선공감역(繕工監役)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한성주부(漢城主簿) · 회인현감(懷仁縣監) 등을 역임하면서 모순된 제도를 지적하고 선정을 베푸는 등 민생의 삶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윤증의 「획일도(畫一圖)」와 이이의 「위학지방도(爲學之方圖)」 등을 강론하며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저서로는 『입재유고(立齋遺稿)』 20권, 『추원록(追遠錄)』, 『동사평증(東史評證)』 등이 있다. 그 가운데 『동사평증>은 단군에서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전 역사를 대상으로 하여, 역사적 사건의 오류를 확인하고 도덕적인 교훈을 얻기 위해, 성리학을 기준으로 사론(史論)의 형식을 취하여 집대성한 것이다. 이것은 당시까지 사론 역사학이 중국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것에서 확장하여 한국사에까지 미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사론서(史論書)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