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식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 정언, 지평, 수찬, 부교리,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정원(正源)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43년(인조 21)
사망 연도
1700년(숙종 26)
본관
연안(延安)
내용 요약

이식은 조선 후기 정언, 지평, 수찬, 부교리,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주로 숙종 대에 남인 계열 대간으로서 남인을 옹호하고 송시열 등 서인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활약하였다. 형벌의 남용, 군정의 문란함, 탐관오리들의 활동 등을 경계하는 등 그 능력을 인정받아 갑술환국 이후 소론 중심의 정국에서도 계속 기용되었다.

정의
조선 후기 정언, 지평, 수찬, 부교리,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이식(李湜)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정원(正源)이다. 사성(司成) 이창정(李昌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심(李襑)이다. 아버지는 이정징(李鼎徵)이며, 어머니 해평윤씨는 윤창언(尹昌言)의 딸이다.

주요 활동

1675년(숙종 1) 증광시 문과주1로 급제하여 정언(正言) · 수찬(修撰) · 지평(持平)을 역임하고, 1678년(숙종 4)에 부교리가 되었다. 이때 노비를 혹독하게 형벌한 사인(士人) 이익대(李益大)의 아내 아정(阿貞)의 사형을 반대하며 지나친 형벌의 남용을 비판하였으며, 남인(南人)의 입장에서 송시열(宋時烈)을 찬양하던 윤헌경(尹憲卿)의 주2하기를 요청하였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 이후 다시 조정에 부수찬(副修撰)교리(校理)응교(應敎) 등으로 기용되어 대사헌 목창명(睦昌明) 등과 함께 송시열의 처벌을 주장하였으며, 왕의 잘못을 연명으로 차자(箚子)를 올렸다가 주3주4을 당하였으나 이내 환수되었다.

1691년(숙종 17)에는 대사간으로서 주5의 호(號)를 정할 때에 주6을 소홀하게 지은 남용익(南龍翼)주7하였다. 경신환국(庚申換局) 당시 옥사(獄事) 과정에서 죽은 윤휴(尹鑴)를 이장(移葬)하려 하자 주8을 청하여 주9주10의 하사를 허락받았다.

이외에도 숙종이 사하리(沙河里)에서 친림(親臨)하여 주11할 때 본병(本兵)과 대장들을 주12하도록 하여 주13의 엄숙함과 기율(紀律)을 엄중함을 추구하였다. 지방민과 갈등을 겪는 현령(縣令) 윤이형(尹以亨)을 끝까지 징계하도록 하여 탐관오리(貪官汚吏)들을 경계하고자 하였다.

그는 주로 조정에서 대간으로서 활약하였으나, 황해도관찰사나 강원도관찰사 등 지방직도 역임하였고,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甲戌換局) 이후 남인임에도 불구하고 탕평 정국을 표방하는 숙종의 정책 기조 아래 계속 기용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국조방목(國朝榜目)』
『숙종실록(肅宗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주석
주1

조선 시대에, 과거 합격자를 성적에 따라 나누던 세 등급 가운데 셋째 등급. 문과(文科)에서는 23명, 무과(武科)에서는 20명을 뽑아 정구품의 품계를 주었으며, 성균관ㆍ승문원ㆍ교서관의 임시직인 권지(權知)에 임명하였다.    우리말샘

주2

허물을 가려내어 벌을 줌.    우리말샘

주3

죄를 지은 자의 벼슬과 품계를 빼앗고 벼슬아치의 명부에서 그 이름을 지우던 일.    우리말샘

주4

조선 시대에, 죄지은 사람의 관작(官爵)을 빼앗고 도성(都城) 밖으로 추방하던 형벌.    우리말샘

주5

아직 왕세자에 책봉되지 아니한 임금의 맏아들.    우리말샘

주6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그 사실을 널리 알리던 교서.    우리말샘

주7

잘못이나 죄과를 논하여 꾸짖음.    우리말샘

주8

정부에서 이재민 등을 구제하기 위하여 내리는 특전(特典).    우리말샘

주9

장사를 지내는 데 드는 비용.    우리말샘

주10

일정한 부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꾼.    우리말샘

주11

임금이 몸소 군대를 사열함.    우리말샘

주12

미루어 생각함.    우리말샘

주13

군대 내의 정세나 형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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