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梁明)
상해 적색구원회(모플) 지부로 가서 운동자금을 마련할 것과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대한 선언서 발표 등의 임무를 띠고 상해로 갔다. 북경에서 ‘엠엘파’ 기관지 『계급투쟁』을 발행하고 여기에 철악(鐵岳), 광우(光宇), 일기자(一記者) 등의 이름으로 여러 글을 실었다. 1929년 5월 길림(吉林)에서 열린 조공재조직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30년 3월 상해에 도착한 고경흠(高景欽)과 함께 조선공산당 선전물의 근거지를 동경(東京)에 만드는 문제를 협의했다. 1931년 12월부터 1932년 8월 15일까지 동방노력자 공산대학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1932년 모스크바에서 조선 관련 글을 써서 코민테른 간행물 『민족식민지문제 자료』에 실었다. 1934년 모스크바에서 외국출판사 한글 담당 직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