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지(朗智)
책이 완성되자 은사(隱士) 문선(文善) 편에 보내 감수를 청하면서 책 말미에 다음과 같은 게를 지어 붙였다. “서쪽 골의 사미가 머리를 조아리며, 동쪽 봉오리 상덕에게 예를 올리네, 가는 티끌 불어 영취산에 보태고, 잔 물방울 날려 용연에 던지네.” 원효는 낭지를 ‘동악 상덕’이라 높이고, 자신은 서곡의 사미로 낮추고 있다. 또 그는 낭지의 학덕을 ‘영취산’과 ‘용의 못’이라 칭송하는 반면에, 자신의 성취는 ‘가는 티끌’과 ‘잔 물방울‘이라 칭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당시 불교계에서 낭지의 위상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낭지는 원효와 지통의 스승이었으며 당대의 대표적 고승이었다. 신라 하대인 원성왕 때 고승 연회(緣會)가 영취산에 살면서 낭지의 전기를 지어 세상에 퍼뜨렸다고 하지만 현존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