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회(黑龍會)
1905년 을사조약에 따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초대 통감으로 취임하자, 흑룡회의 주간인 우치다가 당시 정계의 흑막인 스기야마 시게마루(任山茂丸)의 추천을 받아 통감부 촉탁으로 조선에 와 이토의 막료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흑룡회 낭인들은 한국 강점을 위한 본격적인 이면 작업에 들어가 그들이 수집한 정보와 책략 등을 일본 군벌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수상인 가쓰라 다로(桂太郎), 육군대신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에게 보고하여 즉각적인 한국 강점을 추진했다. 또한 전국 각처에서 밀정 노릇을 하고 있던 낭인들을 통해 민심의 동태, 현지 사정, 지형 등을 정탐하는 동시에, 친일 단체인 일진회(一進會)를 조정하면서 ‘한일합병’을 추진했다. 이토가 1909년 10월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되자 12월 4일 일진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