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중앙초등학교(錦山中央初等學校)
같은 해 10월에 을사조약 반대 의거로 50일간 휴교 후 11월 20일 재개교하여 학생이 20명으로 감소되었다. 1910년 3월에 제1회 졸업생 6명을 배출하였으며, 1911년 4월에 수업연한을 4년으로 연장하였다. 같은 해 9월 4년제 공립학교로 개편되어 금산공립보통학교로 개칭하였다. 1913년 공립간이농업학교가 부설되었고, 1914년부터는 여학생도 모집하였으며, 1920년에 수업연한이 6년으로 연장되었다. 1921년에 부설 간이농업학교를 폐지하고 1923년 육성학교를 부설하였다가 1925년에 폐지하였으며, 1929년 광주학생운동 때에는 전교생이 동맹 휴학하여 10여 명이 무기정학 처분을 받고 1명은 붙잡혀 옥사하였다. 1938년 금산제일공립심상소학교로, 1941년 금산중앙공립국민학교로 개칭되었고, 광복 당시의 재학생은 2,000여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