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昌寧 校洞과 松峴洞 古墳群)
일제강점기때인 1910년세키노 다다시(關野貞)가 방문하여 목마산성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던 고분을 처음 소개하였다. 이후 1917년 9월이마니시 류(今西龍)가 고분의 분포 및 수습조사를 하였고, 하마다 고사쿠(濱田耕作)과 우메하라 스에지(梅原末治)의 21호분과 31호분 발굴, 다니이 사이이치(谷井濟一)의 5호분, 6호분, 7호분, 8호분, 89호, 10호분, 11호분, 12호분, 91호분의 조사가 이루어졌다. 해방 후 경작과 도굴 등으로 파괴되다 1963년 1월 21일에 창녕교동고분군과 창녕 송현동고분군은 사적으로 각각 지정되었다.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은 1980년대 후반부터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조사되어 2011년 7월 28일 두 고분군의 역사성과 특성을 고려하여 사적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으로 재지정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