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랑창(三浪倉)
삼랑창에는 조운선 15척이 편성되어 있었으며, 각 선박에는 사공(沙工)이 1명, 격군(格軍)이 15명, 조보(漕保)가 32명씩 배정되었다. 삼랑창은 밀양, 현풍, 창녕, 영산, 김해, 양산 등 6개 고을의 전세와 대동미를 모아 한성의 경창으로 운송하는 역할을 맡았다. 삼랑창의 세곡은 밀양부사(密陽府使)가 감봉하고 제포만호(薺浦萬戶)가 영납(領納)하였는데, 감봉하는 사람을 도차원(都差員)이라 하고, 영납하는 사람을 영운차사원(領運差使員)이라 하였다. 삼랑창은 현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에 있었으나, 현재는 민가가 들어서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19세기 이후 조세의 금납화가 일반화되면서 세곡 운송의 필요성이 점차 감소하게 되었다. 19세기 말이 되면 조운제도는 사실상 폐지의 운명을 맞게 되었으며, 삼랑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