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수(柳正秀)
같은 해 탁지아문참의(度支衙門參議)와 한성판윤(漢城判尹)이 되었다. 1895년 탁지부참서관(度支部參書官)과 회계국장(會計局長), 사계국장(司計局長) 등을 거쳐 1897년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1901년 양지아문기사원(量地衙門記事員), 1903년 중앙은행창설위원(中央銀行創設委員), 1904년 탁지부협판(度支部協辦)에 올랐다. 1905년 문관전고위원장(文官銓考委員長)과 금고관리장(金庫管理長), 1906년 검사국장(檢査局長)과 건축소장(建築所長)을 겸임하였고, 지방관전고위원(地方官銓考委員)과 지방세조사위원(地方稅調査委員), 1907년 탁지부차관(度支部次官),1908년 회계검사국차장(會計檢査局次長) 등으로 활동하였다. 한일강제병합 후인 1910년 10월 조선총독 자문기구 중추원(中樞院)에 찬의(贊議)로 임명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