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사소(士昭). 유승조(柳承祖)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제근(柳悌根)이다. 아버지는 유수천(柳壽千)이며, 어머니는 부평부사 김성동(金誠童)의 딸이다. 유자신(柳自新)의 아버지이고, 광해군의 비(妃)인 문성군부인(文城郡夫人) 유씨의 할아버지이다.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540년(중종 35)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1546년(명종 1) 지평으로 진출하였고, 이듬해 부수찬 · 수찬 · 교리를 역임하였다. 1548년(명종 3) 병조정랑을 역임하던 중 평안도어사로 파견되어 구황에 허덕이는 백성들의 진휼에 힘썼다.
그 뒤 부수찬에 제수되어 평지의 진전(陳田: 토지대장에는 등록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경작하지 않는 토지)에 대한 면세를 건의하는 등 구휼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그 뒤 장령 · 수찬 · 교리, 사헌부집의, 홍문관부응교, 의정부사인, 상의원정을 거쳐 수선(修繕: 건물이나 도로 및 성지의 수리)을 감독한 공로로 당상관에 올랐다.
1555년(명종 10) 외직인 전주부윤으로 나갔다가 형조참의 · 동부승지를 거쳐, 1562년(명종 17) 성절사로 명나라에 사은하고 돌아왔다. 그 뒤 병조참판 · 청홍도관찰사를 역임하고 동지중추부사의 한직을 맡았으나 곧 태릉 수릉관(守陵官)의 임무를 맡아 아들 유자신(柳自新)을 참봉으로 삼아 부자가 함께 일하였고, 이의 공으로 1자급 가계(加階: 품계가 오름)되었다.
선조가 즉위하자 공조판서에 제수되었다가 1572년(선조 5) 형조판서로 옮겼으며, 이듬해 권철(權轍) · 유희춘(柳希春) 등과 함께 정시(庭試)의 시관(試官)으로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