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기(子器). 돈령도정(敦寧都正) 윤필상(尹弼商)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간(尹侃)이다. 아버지는 윤승홍(尹承弘)이며, 어머니는 종실 부안정(副安正) 이증(李增)의 딸이다.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된 뒤 1537년(중종 32)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39년(중종 34) 승정원주서에 제수되었으나 재주가 모자라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기도 했다. 그 뒤 의정부사인으로 『중종실록』 편수관을 지냈고, 1547년(명종 2) 장령·군자감부정에 제수되었으며, 이듬해 부교리를 거쳐 교리를 역임하였다.
1549년(명종 4)에는 부응교를 거쳐, 의정부 검상에 올랐으며, 1550년(명종 5) 양종(兩宗)과 선과(禪科)를 부활하지 못하게 하는 소를 올렸다. 1552년(명종 7) 동부승지에 임명되었고, 그 뒤 우부승지가 되었다가 1556년(명종 11) 호조참판에 제수되어 성절사 사신으로 선발되었다.
이 때 양친이 칠순이 넘었다는 이유로 성절사 파견을 회피했다가 간원의 탄핵으로 추고되었으나, 그 해 성절사의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이듬해 통정(通政) 이하 제술시험에 입시할 가승지(假承旨)로 선임되었고, 한성부우윤을 거쳐 강원도관찰사로 파견되었다가 돌아온 뒤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다. 소탈하고 지위가 2품에 올랐는데도 걸어서 다니는 등 청빈하게 살다가 1560년(명종 15)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