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氣象廳)
1907년에 통감부관측소와 부산, 목포, 원산, 용암포, 성진 등에 지소가 설치되면서, 관상소는 폐지되었다. 광복 이후 미군정청은 문교부 산하에 관상국(觀象局)을 두었고, 그 책임자로 미군장교 국장 외에 한국인 국장으로 당시 연희대학교 교수인 이원철(李源喆) 박사(재임기간:1945.8~1961.5)가 취임하였다. 1949년 8월 중앙관상대로 개칭되었으며, 이때의 기구는 대장·부대장·총무과·예보과·관측과·통계과·천문과로 구성되었고, 지방에 24개 측후소(남한 14, 북한 10)가 있었다. 1945년 말부터 일기도(850hPa, 700hPa 고도면)를 작성하여 오늘과 내일에 대한 일기예보가 가능했으나, 북한과 중국의 기상자료를 얻을 수 없어 일기분석에 어려움이 많았다. 또한 1946년 이후의 정치적 혼란과 창군하기 시작한 육·해·공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