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농(酪農)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통감부가 설치되어 일본사람들이 많이 이주하여 왔고, 따라서 젖소의 사육두수도 많이 증가하였으리라 생각되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경술국치 뒤의 자료에 의하면, 젖소의 사육두수가 678두, 목장수가 64개였다고 한다. 수적인 면에서 볼 때, 우리 나라 낙농의 발전시기였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일본인에 의해 독점적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산업발전이나 농민들의 소득증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광복이 되었을 때, 우리 나라 젖소 두수는 총 2,296두로 증가되었으나, 이러한 증식도 농업발전이나 농민들의 소득증대에 기여하는 바가 거의 없었다. 젖소를 소유하고 있는 경영주가 전부 일본사람들이었고, 또한 우유를 마시는 소비계층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