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기시(軍器寺)
그 밑에 정(正)·부정(副正)·첨정(僉正)·별좌(別坐)·판관(判官)·별제(別提)·주부(主簿)·직장(直長)·봉사(奉事)·부봉사(副奉事)·참봉(參奉) 등이 있었다. 『경국대전』에 나와 있는 기술직종을 보면 여기에 딸린 공장(工匠)으로는, 칠장(漆匠) 12인, 마조장(磨造匠) 12인, 궁현장(弓弦匠) 6인, 유칠장(油漆匠) 2인, 주장(鑄匠) 20인, 생피장(生皮匠) 4인, 갑장(甲匠) 35인, 궁인(弓人) 90인, 시인(矢人) 150인, 쟁장(錚匠) 11인, 목장(木匠) 4인, 야장(冶匠) 130인, 연장(鍊匠) 160인, 아교장(阿膠匠) 2인, 고장(鼓匠) 4인, 연사장(鍊絲匠) 2인이었다. 세종 때에는 서북 변경의 개척으로 화기 사용이 빈번해지자 군기시에서의 화약기술의 확보를 위해 화약장(火藥匠)의 전지전출을 견제했고, 군기시 안에 화기를 전담하는 10여 인의 관원을 두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