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익(閔泳翊)
1885년 초 임오군란 후 청나라에 납치, 유폐된 흥선대원군의 회국 의사를 표명해 온 북양대신 이홍장(李鴻章)과 대원군의 귀국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톈진에 가서 대원군의 회국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 뒤 협판내무부사(協辦內務府事)로서 지리국(地理局), 군무국(軍務局)의 총판을 겸직하고, 이어 한성부 판윤과 병조 판서를 지냈다. 1886년 정부의 친로거청정책(親露拒淸政策)을 반대하는 한편,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이러한 사실를 밀고하였다가 정치적 위협을 느껴, 1887년 내탕금(內帑金)을 가지고 홍콩과 상해(上海) 등지를 전전하였다. 귀국하여 통위사(統衛使)가 되었고, 1888년 6월 연무공원판리사무(鍊武公院辦理事務)로서, 학교의 운영 담당 위원이 되어 한규설(韓圭卨), 이종건(李鍾健) 등에게 실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