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혈연, 인연, 입양으로 연결된 일정 범위의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을 가리키는 가족학 용어로서, 친족 집단을 말한다. 가족의 크기, 세대별 유형, 가족 형태, 가족 유형 등을 포함하는 가족의 형태는 사회구조적 요인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다. 또 가족의 내적 운영 원리인 가족 원리도 크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오늘날의 가족은 외적으로는 소가족화의 경향이 뚜렷하며, 내적으로는 권위, 지배, 복종 등의 가치에서 자유로운 인간의 대등한 결합, 인격적 유대라는 가치를 우선에 두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가족에서의 혈연관계는 부모-자녀관계를 기본으로 하고 그 확장을 포함한다. 예컨대 조손관계는 부모-자녀관계가 수직적으로 확장(직계친)된 것이며, 형제관계는 부모를 공유하는 수평적 확장(방계친)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인연(姻緣)관계는 부부관계를 기본으로 하고 그 확장을 포함한다. 예컨대 고부관계는 한 여성의 부부관계와 그 남편의 모자관계의 결합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입양은 생물학적 자녀가 없는 경우에 특정의 목적을 위하여 사회적인 자녀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무제한적인 확장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며 일정한 규칙에 따라 범위가 제한된다. 또한 수명과 출산 등 생물학적인 제한에 의하여 그 최대 범위가 제한되기도 한다. 어떤 규칙을 적용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가족 구성이 가능하지만, 한 사회는 일정한 규칙에 따름으로써 가족을 구성하는 친족원의 범위를 한정하게 되고 따라서 그 사회의 특징적인 가족유형을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일정 범위의 친족원만으로 가족이 구성되면, 이들은 자기들이 한 가족이라는 가족의식을 가지게 된다.
이와 같이 구성되어 생계를 함께하는 집단을 가족이라 하고 이 가족집단의 구성원을 ‘가족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민법」 등에서 ‘가족’이라 할 때 집단에 속하는 개인(가족원)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와 같이 구성된 가족은 특정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이는 사회의 구조와 역사에 따라 다소간 변화한다.
한 가족의 전체 가족원이 언제나 하나의 집단에 속하여 함께 생활하는 것은 아니다. 학업과 취업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가족원의 일부가 일시적으로 가족을 떠나는 경우가 있다. 또한 고용인이나 내객 등 가족원이 아닌 자가 함께 생활하기도 한다. 고려․ 조선시대의 호적문서를 보면, 많은 경우 노비가 비가족원으로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 가구’ 개념을 활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더욱이 「인구주택총조사」나 「가족실태조사」 등 대량적인 조사는 가구를 단위로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러한 가족과 가구의 관련성에 유의하여야 한다. 일부 가족원이 출타하여 일시적으로 다른 가구를 형성하거나 다른 가족(가구)의 비가족원이 되어 있는 경우라도, 그들이 생계를 공동으로 하며 한 가족의 가족원이라는 의식이 있는 한 동일 가족의 구성원으로 간주해야 한다. 2010년 『제2차 가족실태조사』에 의하면 조사 대상 2,500가구 가운데 90.2%는 모든 가족원이 함께 거주하고 있으나, 9.8%의 경우에는 비동거 가족원이 있다고 나타난다. 즉 전체 평균 가족원수는 2.9명인데, 동거하고 있는 가족원수는 2.8명이고, 0.1명의 가족원은 출타하여 다른 곳에서 살고 있다(전반적으로 보면 전체 가족원의 3.4%는 출타중이다).
현행 「민법」 제779조(가족의 범위)에는 가족(가족원)의 범위를 기본적으로 자기를 중심으로 자기의 배우자, 형제자매, 직계혈족(부모와 자녀)을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라면, 자기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배우자의 형제자매까지를 가족원으로 한다. 그러나 이는 법률상 가족(원)의 범위를 제시한 것으로 현실 가족의 상황과는 다를 수 있다.
현실의 가족이 어떠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가를 조사․연구한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55년의 제1회 간이총인구조사 자료를 분석한 한 연구는 당시의 자료에 나타나는 가족원의 종류를 가구주를 기준으로 하여 가구주와의 관계를 표시함으로써 다음과 같이 제시한 바 있다: (가구주), 배우자, 배우자의 혈족, 자, 자의 배우자, 손, 손의 배우자, 증손, 부, 모, 형제, 자매, 형제자매의 배우자, 조카(질), 조부모, 백숙부, 백숙모, 고모, 종형제자매, 조카(질)의 배우자, 종손. 2010년 『제2차 가족실태조사』에 나타난 가족원의 범위는 가구주를 포함하여 다음과 같은 13종이었다: (가구주), 배우자, 자녀, 자녀의 배우자, 손자녀, 손자녀의 배우자, 가구주의 부모, 배우자의 부모, 가구주의 형제자매, 배우자의 형제자매, 가구주의 조부모, 배우자의 조부모, 기타.
앞의 연구에서 ‘배우자의 혈족’으로 분류된 것이 뒤의 조사에서는 배우자의 부모, 형제자매, 조부모 등으로 세분화 되었고, 앞의 연구에 보이던 형제, 자매 이외의 방계 친족원들이 뒤의 조사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로부터 현실 가족을 구성하는 가족원의 범위가 직계친, 배우자, 형제자매 정도로 축소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실제 가족원의 종류와는 달리, 사람들이 누구를 가족원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는 측면에서 ‘주관적 가족의 범위’를 살펴볼 수도 있는데, 2010년 『제2차 가족실태조사』에서는 ‘자녀’(86.2%), ‘배우자’(81.6%), ‘부모’(77.5%), ‘형제자매’(63.3%), ‘배우자의 부모’(50.5%)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2005년의 『제1차 가족실태조사』 결과와 비교해 보면, 가족의 범위를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범위가 점차 좁아지고 있는 경향을 알 수 있다.
가족은 개인과 사회의 중간에 위치한 체계로서 전체 사회에 대하여는 하위체계로, 개인에 대하여는 상위체계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가족의 기능은 가족제도가 전체 사회에 대해 작용하는 기능(대외적 기능)과 가족 구성원에 대한 기능(대내적 기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여러 학자들이 제시하고 있는 가족 기능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한 연구에 의하면 구미 학자들은 교육(사회화), 성, 자녀출산 및 재생산, 정서적 만족․지지, 애정․동료감, 보호․양호, 사회적 지위 부여, 사회적 정체감, 종교, 오락, 사회참여 등의 순으로 제시하고 있고, 한국의 경우는 교육(사회화), 양육, 성, 자녀출산 및 생식, 경제, 휴식, 오락, 보호․양호, 종교, 정서적 만족․지지, 사회적 지위부여 순으로 제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학자에 따라서 관점이 다르고 기능의 내용이 상이하지만, 이 가운데 성적 기능, 자녀출산, 교육, 경제적 기능 등의 4가지 기능은 대다수가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내용이다.
한국의 가족기능 연구는 농촌 가족과 도시 가족으로 나뉘어 주로 대내적 기능을 중심으로 실증적인 연구가 수행되었다. 1969년에 농촌 가족을 대상으로 가족기능을 실증적으로 접근한 한 연구는 기능의 내용으로 성 및 애정, 생식, 양육, 경제, 교육, 보호, 휴식 및 오락, 종교 등 8가지를 조사했는데, 교육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가족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1990년에 가족의 대내적 기능을 조사한 한 연구에 의하면, 조사대상자들은 각 기능의 중요도 순위를 애정․정서, 자녀교육․사회화, 경제, 친척관계유지, 성, 오락․휴식, 종교․도덕 순이라고 응답했다. 산업화와 가족기능의 변화를 살펴본 한 연구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가족의 기능이 축소되거나 내용이 변화되는 경향이 드러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족의 외적 구조는 가족의 크기(가족원의 수), 세대별 유형(가족이 몇 세대의 가족원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가족형태(가족원의 종류에 따라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이루고 있는가), 가족유형(가족원 결합의 원리와 범위)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가족의 외적 구조를 파악하는 가장 간편한 방법은 구성원의 수에 따른 가족의 크기를 살펴보는 것이다. 가족원수를 구체적으로 명기하여 파악할 수도 있고(예컨대 3인 가족, 4인 가족 등) 또 한편으로는 한 시대, 한 지역의 평균 가족원수를 산정함으로써 가족 특질의 일면을 나타낼 수 있다. 어느 범위의 친족원까지를 가족원으로 생각하느냐 하는 ‘주관적 가족의 범위’와는 달리 현실의 가족은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그 크기가 제한된다.
가족의 특성은 가족을 구성하는 가족원의 세대 수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즉 가족이 한 세대의 사람들로만 구성되는 경우(1세대 가족), 부모와 자녀 등의 두 세대로 구성되는 경우(2세대 가족), 또는 조부모․양친․자녀와 같이 세 세대로 구성되는 경우(3세대 가족) 등을 구분해서 살펴봄으로써, 한 사회의 가족의 특질을 알아볼 수 있다.
가족의 구성을 실제의 가족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가의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이를 가족형태라 한다. 이때 가족 구성의 차이를 잘 드러내기 위하여 구성원의 세대수, 가족원의 종류, 연령 등이 기준으로 사용된다. 1955년의 제1회 간이총인구조사 자료를 분석한 한 연구는 가구주와 그의 직계친의 세대수, 그 직계친의 배우자 유무에 따라 가족형태를 21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한편 여성가족부의 2010년 『제2차 가족실태조사』에서는 21종의 가구 세부형태를 사용하여 가족형태를 조사했는데 이 조사에서는 세대와 가족원의 종류 이외에 연령과 성의 기준이 사용되었다.
최근의 통계청 자료는 이보다는 간단한 분류를 사용하여 제시된다. 예를 들면,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의 결과는 가족형태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제시하고 있다: 1세대(2종):부부(15.4%), 기타(2.1%) / 2세대(5종):부부+미혼 자녀(37.0%), 부+미혼 자녀(2.0%), 모+미혼 자녀(7.2%), 조부모+미혼손 자녀(0.3%), 기타(4.8%) / 3세대(3종):부부+미혼 자녀+양친(0.8%), 부부+미혼 자녀+모친(또는 부친)(3.0%), 기타(2.4%) / 4세대 이상(1종)(0.1%) / 1인 가구(23.9%) / 비친족 가구(1.2%).
혈연․인연․입양으로 관계를 맺은 사람 가운데 가족을 형성하는 친족원의 범위를 한정하는 확장의 규칙에는 여러 가지 대안이 있지만, 한국의 가족과 관련하여 특히 의미가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확장을 허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자녀가 혼인하면 별개의 가족을 이루어 독립하게 되므로 부부와 그 미혼의 자녀로만 이루어지는 핵가족이 형성된다. 장남 부부만을 포함하도록 하는 수직적 확장 규칙이 적용되면, 부부와 그 장남 부부와 그 미혼자녀로 이루어지는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3세대 직계가족이 형성된다(여기에 장손의 부부와 그 자녀가 추가되면 4세대 이상 확대될 수 있다). 장남 부부 이외에 차남 이하의 부부까지 포함하도록 수평적 확장이 허용되면, 부부와 그 장남 부부와 차남 부부, 그들의 미혼 자녀를 포함하는 방계가족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이 또한 4세대 이상 확대될 수 있다).
한편 고려시대에는 처부와 처모를 가족원으로 한다든가 또는 기혼의 딸과 사위를 가족원으로 하는 가족이 상당수 발견되는데, 이는 조선 중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남계(부계)의 혈연자가 가족집단을 구성하는 것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유형을 방계가족과 구별하기 위해 양변적(쌍계적) 방계가족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에 덧붙여 전통사회에 존재했던 일부다처 현상을 고려하면 한 남자가 몇 명의 배우자와 혼인하는가에 따라서 일부일처 가족과 일부다처 가족의 두 형태로 분류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부다처형 가족 가운데 중요한 유형은 일부다처제 부부가족과 일부다처제 직계가족의 유형이다.
이와 같이 구분한 ‘가족유형’은 한 사회의 가족 구성의 원리상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조선시대의 직계가족이 현대에 핵가족으로 변화하고 있다면, 그 변화의 추이를 살펴보는 데 이러한 가족유형을 사용하면 편리하다. 예를 들면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족유형을 비교분석한 한 연구에서는 가족유형을 과도적 가족, 부부가족, 직계가족, 방계가족으로 분류하고 있다. 최근의 통계자료는 핵가족, 직계가족, 기타가족의 구분을 사용하고 있다. 이때 ‘핵가족’은 부부, 부부+미혼자녀, 한부모+미혼자녀 등의 형태를 포함하고, ‘직계가족’은 부부+양(편)친, 부부+양(편)친+자녀 형태를 포함하는 것이다. 나머지 3세대, 4세대, 기타 형태는 ‘기타가족’으로 간주된다.
가족 형태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앞에서 살펴본 가족의 크기, 세대별 유형, 가족형태, 가족유형 등 외적 구조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나 시기별로 자료가 부족하거나 연구가 부족한 경우가 있어서 모두 자세한 논의를 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고대의 가족형태는 신라시대만을 살펴보고, 이후의 가족형태는 가용한 자료의 범위 내에서 간단히 살펴볼 것이다.
신라의 가족형태에 관한 자료는 일부 금석문과 관련사료, 그리고 일본의 쇼소인(正倉院)에 소장되어 있는 소위 「신라촌락문서」 이외에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신라시대의 가족형태에 대해서는 이러한 자료를 통해서 어느 정도 그 실태를 추정할 수 있다. 먼저 719년( 성덕왕 18) 감산사의 「미륵보살조상기」를 보면, 부모․아우․자매․서형(庶兄) 등을 위해 미륵상을 만들었다고 되어 있어서, 자매와 형제간, 또는 적자(嫡子)와 서자(庶子)간에 차별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이들은 한 가족원이 될 가능성이 짙다고 하겠다. 또한 720년의 감산사 「아미타여래조상기」에서도 아우와 누나를 차별하지 않았고, 또 죽은 아내의 명복을 빌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갈항사의 「석탑기」(758년 추정)에 의하면, 생질(甥)․누나․누이의 세 사람이 합심하여 탑을 세웠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자매 부모의 처지에서 보면 생질은 외손이 되고, 자매는 딸이 된다. 이들도 한 가족을 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혼인 후에도 딸이 오랫동안 친정에서 생활하였기 때문에 자매와 생질이, 즉 딸과 외손이 더욱 근친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신라촌락문서」에는 모두 여덟 사례의 이동연(移動烟)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를 통하여 신라의 가족형태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문서에 나타나는 ‘연(烟)’ 또는 ‘공연(孔烟)’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상반된 견해가 있지만, 입촌하거나 이촌하는 이동연에 대해서는 이를 자연호(自然戶)로 보는 것이 다수의 견해이다. 이들 여덟 사례 가족의 인원수는 3인 가족이 1호, 4인 가족이 3호, 5인 가족이 1호, 6인 가족이 2호, 11인 가족이 1호로서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가족의 인원수와 유사하다. 또한 이들 가족의 구성이나 형태를 살펴보면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딸․사위․처부모와 동거하는 가족이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서류부가의 혼인거주규칙과도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의 가족유형 내지 형태에 관한 연구는 자료의 빈곤 등으로 활발하지 못하다. 여기서는 1969년에 국보로 지정된 「이태조호적원본」을 자료로 하여 이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 자료는 이성계의 호적원본이 아니라 고려 후기 일반 호적의 일부인데, 이 호적이 작성된 연대는 1391년(공양왕 3)으로 추측된다. 이 호적문서에 포함되어 있는 가구 중 판독 가능한 호수는 양인 19호, 천민 13호의 합계 32호이다.
양인 19가족을 유형적으로 구별해 보면, 첫째 부부와 미성년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이 6호, 둘째 부부와 배우자 없는 성인 자녀(30세 이상)로 이루어진 가족이 3호, 셋째 처부․처모를 포함하는 가족이 3호, 넷째 사위를 포함하는 가족이 5호, 다섯째 연로한 자매를 포함하는 가족이 1호, 여섯째 처와 전남편의 자식을 포함하는 가족이 1호이다.
위의 자료는 가족 고찰의 자료로서 한계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통해 고려시대 가족의 기본적 유형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즉 처부와 처모를 가족원으로 한다든가 또는 기혼의 딸과 사위를 가족원으로 하는 가족이 상당수 발견되는 것은 조선 중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남계(부계)의 혈연자가 가족집단을 구성하는 것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고려시대의 가족유형에 대해서는 직계가족․방계가족 등의 개념을 적용하기 곤란하므로, 잠정적으로 양변적(쌍계적) 방계가족으로 규정하는 경우도 있다.
방계가족이라 할 때에는 가장의 유배우(有配偶) 방계친, 즉 동생․조카 등이나 유배우 직계비속, 즉 차남 이하를 포함하는 가족을 의미하지만, 양변적 방계가족이라 할 때에는 위와 같은 방계친의 존재여부와 관계없이 기혼의 딸과 배우자를 포함하는 가족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중기부터 직계가족이 우리나라의 이상적인 가족유형으로 정립되기까지는 이러한 양변적 방계가족이 상당히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상황은 다음과 같은 사료에 나타난 기록으로도 뒷받침된다: 일찍이 부모를 여읜 후 백숙부나 당숙부 집에서 양육된 것이 아니라 외가에서 양육된 사례( 『高麗史』 卷99 列傳 12), 출가한 딸이 과부가 되어 친정에 돌아와서 생활하는 예(「崔婁伯妻廉氏墓誌」, 1148), 여동생이 과부가 되어 친정 오라버니댁에 와서 생활을 한 사례(「王瑛墓誌」, 1187), 8명의 아들과 1명의 사위가 함께 거주한 사례( 『高麗史節要』 卷18 元宗順孝大王甲寅條), 출가한 자매가 동거한 사례(『高麗史』 卷124 列傳 37 裵佺), 아버지가 출가한 장녀의 집에서 사망한 사례(「延德郎君韓氏墓誌」), 부모가 아들과는 별거하더라도 딸과는 동거하며 딸이 부모를 봉양한다는 사례(『高麗史』 卷109 列傳 22), 고려시대에는 남자가 여자집에 장가들어 거기서 아들이나 손자가 성장할 때까지 지냈다는 전형적인 서류부가의 사례( 『太祖實錄』 卷29 太宗 15年 春正月 甲寅條). 이들 사례는 고려시대의 가족유형이 조선 후기에 이상형으로 생각한 직계가족과 크게 달랐음을 좀 더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의 가족유형을 연구하는 자료로는 각종의 호적문서와 실록, 그 밖의 자료(묘지명 등)가 있다. 그 동안 실록과 호적 등을 대상으로 조사 발표된 1639년∼1867년의 호당 인원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조선시대 가족의 크기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이때 호(戶)에는 노비 등 비가족원이 포함되어 있다. 먼저 호당 인원은 대체로 4인과 5인 사이였으며 이러한 경향이 17세기 후엽부터 19세기 중엽까지 별다른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전국규모의 호당 인원과 도시지역인 대구의 호당 인원 사이에도 큰 차이가 발견되지 않는다.
한편 대구호적과 울산호적의 분석을 통하여 호구(가구)에서 비가족원(노비)을 제외한 가족의 평균인원을 신분별로 살펴볼 경우, 양반가족의 평균인원수는 대체로 3.5인 미만으로 나타나며, 시대별로도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양반가족의 평균인원이 상민가족의 평균인원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때 자료로서의 호적문서에는 여러 가지 제약점이 있으므로 호적상으로 나타난 호당 인원 내지 가족 평균인원을 실제상의 호당인원 내지 가족 평균인원과 같이 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된다.
자료로서의 제한점을 고려하는 가운데 호적문서들을 분석해 보면 가족의 크기, 세대별 유형, 구성상의 가족형태, 결합범위로 본 가족유형 등을 알 수 있고, 또한 호주(가구주)의 성별과 연령, 부자 연령차, 부부 연령차, 가족원의 범위, 결혼형태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여기서는 가족유형을 주로 살펴보고 나머지는 개괄적으로 살핀다. 가족유형은 과도적 가족․부부가족․직계가족․방계가족의 4유형과 여기에 1인 가족을 포함하여 양적 고찰을 할 수 있다. 또한 신분 계급과 가족형태 사이에 일정한 연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크게 양반․ 상민․천민의 세 신분으로 구분하여 4종의 호적문서로부터 가족유형을 정리하면 〈표 1〉과 같다.
연대(지역) (가족 총수) |
1630년(산음) (N=660) |
1756년(곡성) (N=183) |
1807년(양좌동) (N=254) |
1825년(대구) (N=2,9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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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 양반 | 상민 | 천민 | 양반 | 상민 | 천민 | 양반 | 상민 | 천민 | 양반 | 상민 | 천민 | |
유형 | 1인가족 | 15.4 | 27.3 | 32.8 | 11.1 | 16.1 | - | 4,8 | 1.6 | - | 1.3 | 4.7 | 10.4 |
과도적가족 | - | 1.0 | 0.8 | 2.2 | - | - | - | - | - | 0.2 | 0.8 | 1.3 | |
부부가족 | 75.9 | 62.8 | 61.4 | 57.8 | 76.3 | - | 45.2 | 96.8 | - (4) | 56.4 | 71.2 | 65.7 | |
직계가족 | 8.7 | 6.9 | 4.2 | 23.3 | 6.5 | - | 40.4 | 1.6 | - | 33.7 | 23.2 | 18.3 | |
방계가족 | - | 2.0 | 0.8 | 5.6 | 1.1 | - | 9.6 | - | - | 8.4 | 0.1 | 4.3 | |
계 (가족 수) | 100.0 (149) | 100.0 (392) | 100.0 (119) | 100.0 (90) | 100.0 (93) | 100.0 (0) | 100.0 (188) | 100.0 (62) | 100.0 (4) | 100.0 (1,128) | 100.0 (1,631) | 100.0 (230) | |
〈표 1〉 조선시대의 가족유형(단위: %) | |||||||||||||
*출처: 『한국가족제도사연구』(최재석, 일지사, 1983) |
〈표 1〉로부터 조선 중기 이후의 가족유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전체적으로 보아 직계가족보다 부부가족이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으며, 도시지역(대구)과 농촌지역(산음․곡성․양좌동) 사이에 의미 있는 차이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서구적인 핵가족제도의 성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직계가족 제도하에서도 가족주기상 일정시점에서는 외형적으로 부부가족의 형태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둘째, 신분별로 보면 신분이 높은 양반층에서는 상민․천민층에 비해 직계가족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특히 저명한 양반 동족마을인 양좌동에서는 양반의 경우, 부부가족과 직계가족의 비율이 거의 대등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산음장적의 경우와 비교하면, 같은 양반층이라도 지위의 차에 따라 부부가족․직계가족의 비율에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셋째, 네 지역 모두에서 방계가족의 비율은 대단히 낮기 때문에 혼인한 차남 이하가 그의 배우자와 함께 부모의 집에 동거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상기 호적문서를 통해 가족유형 이외의 다른 특징들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결혼형태를 보면 대체로 양반은 양반끼리, 상민은 상민끼리, 천민은 천민끼리 결혼하는 계급내혼제가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양반남자와 상민처, 상민남자와 천민처의 예처럼 자기 신분보다 한 계급 낮은 신분의 여자와 결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만 천민의 경우 반대로 천민남자와 상민여자가 결혼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배우자의 유무에 따라 보면, 무배우의 가구주는 상민이나 천민층에 많다. 가구주의 연령은 양좌동처럼 상민들이 양반에게 사회경제적으로 예속되어 있을 경우 반상간에 뚜렷한 차이가 있으나, 그 밖의 호적에서는 반상간의 차이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의 연령차를 보면, 연령차가 적은 가족이 상민보다 양반에 약간 많은 경향을 보이는데, 이것은 초혼연령과 관계가 있다. 부부의 연령차를 보면, 대체로 어느 신분을 막론하고 처연상형(妻年上型) 부부보다는 남편연상형의 부부가 많다. 그런데 이를 신분별로 보면, 양반층이 상민층에 비해 처연상형 부부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양좌동의 양반의 경우는 남편연상형의 부부보다 처연상형의 부부가 훨씬 많았다. 전반적으로 말해서 신분에 따라서 가족 성격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으며, 대체로 양반가족과 상민가족의 유사성보다는 상민가족과 천민가족의 유사성이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까지의 가족형태에 대해서는 주로 호적문서를 자료로 하여 고찰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근대 이후에는 설문지를 통한 조사나 국세조사․인구조사 결과를 이용하여 가족형태를 연구할 수 있다. 1903년과 1906년에 수집된 한말 한성부 호적 4,814가구를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독신가구 5.4%, 비가족 가구(과도적 가족) 2.0%, 단순가족(핵가족) 52.7%, 확대가족 16.8%, 복합가족 21.6%, 기타 1.4%. 이 연구에 의하면, 가구별 분포는 핵가족 가구가 52.7%로서 최빈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별로 분석하면 당시 인구의 44.3%가 핵가족에 속하는 반면 51.4%의 인구는 확대가족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65세 이상의 연령층에서는 18.2%만이 핵가족에 속하며 71.8%가 확대가족에 속해 있다. 평균 가족원 수는 4.04명이고, 가족원의 범위는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앞에서 살펴본 조선시대의 경우(〈표 1〉) 신분에 관계없이 언제나 핵가족(부부가족)이 분포상 다수를 나타내고 있었으나, 그것이 핵가족 사회임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이와 유사하게 한말 호적 자료에 의한 분석도 한말의 가족 구조를 핵가족이었다고 볼 수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1934년에는 전국(북한 포함)의 27개 중등학교 학생 9,933가족을 대상으로 세대별․남녀별․주거별(동거 혹은 별거) 근친자에 대한 설문조사가 실시되었다. 이에 의하면, 1934년 중등학교 학생의 평균가족원수는 7∼8인으로 나타난다. 이는 전국 호구조사에 의한 평균가족원수(1912년 5.0인, 1916년 5.3인, 1921년 5.3인, 1926년 5.5인, 1931년 5.3인)보다 훨씬 높은 수치이다(이러한 차이는 조사대상으로 삼은 중등학교 학생 가족의 대다수가 비교적 부유한 계층에 편중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1934년 무렵, 중류 이상의 가족에서는 대가족의 경향이 두드러졌음을 알 수 있다. 1934년의 조사에서 한 가지 흥미 있는 사실은 축첩(蓄妾)의 비율이 비교적 높다는 것이다. 즉 응답자(학생)의 아버지 세대에서 유처축첩(有妻蓄妾)을 하고 있는 경우가 539가족으로 전체의 5.4%에 달하고 있다.
광복 이후에는 인구조사가 주기적으로 실시되었으므로 이러한 자료를 통하여 각 시기의 가족의 크기, 세대별 유형, 구성상 가족형태, 결합범위로 본 가족유형 등을 살펴볼 수 있고, 이 기간 동안의 변화양상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먼저 1955년의 간이국세조사와 1975년의 인구조사의 자료를 통해 현대의 가족형태를 고찰한 결과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이는 조사자료 원표 중 각각 1,000분의 1을 표본 추출한 것이고, 1955년에는 3,801가구, 1975년은 6,537가구가 분석대상이 되었다. 특히 1955년부터 1975년까지의 기간은 우리나라에서 산업화․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시기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경제적 변화가 가족의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일이다.
가족의 평균인원수를 보면 1955년에 5.15인이었으나 1975년에는 4.64인으로 감소하고 있다. 또한 가족의 크기별 분포를 보면 소인수(少人數) 가족이 증가하고 다인수(多人數) 가족은 감소하거나 소멸하고 있다. 즉 1955년에 5인 이하의 가족이 59.4%, 6인 이상의 가족이 40.6%인 데 반해, 1975년에는 5인 이하의 가족이 65.3%, 6인 이상의 가족이 34.7%로서, 5인 이하의 가족이 이 기간 동안 약 6% 정도 증가하고 6인 이상의 가족은 그만큼 감소하고 있다. 이 시기의 가족형태를 보면, 대체로 단순한 형태의 가족은 증가하고 있으며 복잡한 가족의 형태는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가족의 세대별 유형을 비교해 보면 이 기간 동안 1세대․2세대가족은 9.6% 증가한 데 반하여, 3세대 이상의 가족은 그만큼 감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대별 유형을 도시․농촌별로 비교해 보면, 도시지역이 농촌지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1세대․2세대 가족의 비율은 높고, 3세대 이상 가족의 비율은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다음에 살펴볼 부부가족의 증가와 직계․방계가족의 감소와 상응하는 것이다.
1955년과 1975년의 가족유형을 보면 부부가족은 63.6%에서 71.5%로 약 8% 증가했고, 반면에 직계가족은 30.7%에서 19.5%로 약 1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우리의 전통적 가족유형이라 할 수 있는 직계가족이 점차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방계가족의 비율도 같은 기간에 약 1% 감소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직계가족 비율의 감소와 그 흐름이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가족규모의 축소현상과 부부가족의 증가현상은 이 기간 동안의 산업화・도시화의 진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최근의 현황을 2010년의 「인구주택총조사」와 『제2차 가족실태조사』를 통하여 살펴본다. 먼저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의 결과를 보면(여기서는 자료의 제약으로 가구 현황을 살펴본다), 한국 가구의 평균 크기는 2.69명으로서, 2005년의 2.88명에 비해 감소하고 있다. 2010년 가구의 크기별 분포를 보면, 1인 가구 23.9%, 2인 가구 24.3%, 3인 가구 21.3%, 4인 가구 22.5%, 5인 이상 가구 8.1%로 나타난다. 1990년 이후 가장 주된 유형의 가구는 4인 가구였으나, 2010년에는 2인 가구가 가장 주된 가구 유형으로 등장했다.
한편 전국적인 표본조사에 의한 2010년 『제2차 가족실태조사』에 나타난 가족의 크기별 분포와 평균 가족원수를 보면 인구총조사 결과에 비해 평균 가족원수가 약간 큰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가족실태조사가 출타 가족원을 포함하여 전체 가족원 수를 조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조사에 의하면 한국 가족의 크기는 4인 가족 26.9%, 2인 가족 26.1%, 3인 가족 21.7% 순으로 분포하며, 평균 가족원수는 2.9명으로 나타난다.
가족의 세대별 유형을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의 결과를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반가구는 17,339천 가구인데 이 가운데 1인 가구(23.9%)와 비친족 가구(1.2%)를 제외하면 친족가구는 74.9%이다. 이 친족가구의 세대구성을 보면, 1세대 17.5%, 2세대 51.3%, 3세대 6.1%, 4세대 이상 0.1%로 나타난다. 2세대 가구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다음은 1세대, 3세대 순이다.
한편 『제2차 가족실태조사』의 결과를 보면 1세대 21.0%, 2세대 58.3%, 3세대 이상 4.9%, 1인 가구 15.8%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의 결과와 같은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제2차 가족실태조사』는 가족형태를 21종의 세부형태로 조사하고 이를 범주화하여 6개의 가족형태로 요약하여 제시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2010년의 가족형태의 분포는 ‘양친+자녀’ 48.4%, ‘부부’ 19.6%, ‘한부모+자녀’ 7.3%, ‘3세대 이상’ 4.9%, 1인 가구 15.8%, 기타 4.0%로 나타난다.
〈표 2〉는 가족유형과 가족형태의 최근의 변화 현황을 보여준다. 표에 의하면 지난 30년간 핵가족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한 반면, 3세대 가족 등 직계가족의 비중은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즉 핵가족 비중은 1970년 71.5%에서 2010년 82.3%로 증가했고, 직계가족은 1970년 18.8%에서 2010년 6.2%로 감소했다. 이를 통해 통계청은 부부와 양친과 자녀로 구성된 직계가족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될 것으로 예상하는 반면, 가구 분화와 더불어 핵가족 중 부부가족의 비중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구분 | 1970 | 1975 | 1980 | 1985 | 1990 | 1995 | 2000 | 2005 | 20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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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가구 수(천 가구) | 5,576 | 6,367 | 7,470 | 8,751 | 10,167 | 11,133 | 11,928 | 12,490 | 12,995 | |
핵가족(%) | 부부 | 5.4 | 5.0 | 6.4 | 7.8 | 9.3 | 12.6 | 14.8 | 18.0 | 20.6 |
부부와 미혼자녀 | 55.5 | 55.6 | 56.5 | 57.8 | 58.0 | 58.6 | 57.8 | 53.7 | 49.4 | |
편부모와 미혼자녀 | 10.6 | 10.1 | 10.0 | 9.7 | 8.7 | 8.6 | 9.4 | 11.0 | 12.3 | |
직계가족 (%) | 부부와 양(편)친 | 1.4 | 0.5 | 0.6 | 0.8 | 0.9 | 1.1 | 1.2 | 1.2 | 1.2 |
부부와 양(편)친과 자녀 | 17.4 | 10.9 | 10.4 | 9.9 | 9.3 | 8.0 | 6.8 | 5.7 | 5.0 | |
기타가족(%) | 9.7 | 17.9 | 16.1 | 14.0 | 13.8 | 11.2 | 10.1 | 10.4 | 11.6 | |
〈표 2〉 가족의 형태별 분포 (1970∼2010년) (단위: 천 가구, %) | ||||||||||
*출처: 『인구주택총조사』(통계청, 2010) |
가족유형을 포함한 가족의 형태는 이 밖의 가족제도와의 연관 아래서 그 본질이 파악될 수 있다. 조선 후기 이후 한국인의 이상적인 가족유형은 부부와 그 직계비속 중 장남․장손 등의 가계계승자와 이들의 배우자로 구성되는 이른바 직계가족이었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전의 이상적 가족유형은 직계가족이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즉 앞에서 소개한 여러 자료를 통해 고려시대의 가족은 양변적 방계가족이었다고 추정하였다. 이러한 양변적 방계가족에서 직계가족으로 전환한 시기를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변화가 서류부가의 혼인제도․재산상속․제사상속․양자제도․족보 등과 관련이 있음은 명백하다.
먼저 조선 중기 이전 시기와 조선 중기의 변화 양상을 특히 가족구성의 원리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고자 한다. 가족제도사의 연구성과를 보면 삼국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약 2,000년의 한국사회사를 통해 볼 때 어느 시대에나 서로 모순되는 제도는 존재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즉 서로 모순되거나 이질적인 제도는 신라시대에도 존재했었고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존재했으며 오늘날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조선 전기 이전까지의 상황을 요약해서 말하면, 이 기간 동안 병존해 온 두 개의 이질적인 원리란 하나는 비부계적(非父系的)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법제뿐 만 아니라 실제로 행해진 것을 알 수 있는 기록이 다 갖추어져 있는 경우를 살펴보면 실제적인 것은 비부계적 원리의 것이고 법에 정해진 규칙은 부계적인 것이었다. 한편 이들 이질적인 요소들을 살펴보면 부계적인 성격을 가진 것은 대체로 외래적인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부계적인 성격을 가진 요소들은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외래적인 것으로서 법제에만 나타나고 실제의 생활에 반영되지는 못했으며, 반대로 비부계적인 성격을 가진 요소들은 그 당시로 볼 때 한국 고유의 것으로서 실제의 생활에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선 중기에 들어서면 제도와 실제에 있어서 부계적 요소가 강화되어, 가족제도 상의 실제와 법제의 불일치는 감소하게 된다. 조선왕조가 표방하는 왕정의 궁극적인 목표를 주자학적 유교사회의 구현이라고 한다면 유교의 성격상 가족에 대한 강조, 특히 ‘효’에 대한 강조는 필수적이다. 여말선초와 조선 중기의 격심한 사회․경제의 변동과정에서 유교적 통치이념은 민중에게 깊이 체험될 수 있었고, 그 결과 조선 중기 이후에 가족제도는 심대한 변화를 겪게 된다. 그 변화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 중기 이후에는 서류부가의 기간이 점차 단축되어 부처거주의 직계가족이 이상적인 가족이 되었다. 둘째, 재산상속의 경우에는 아들-딸, 장남-차남의 차별이 생겨 아들 우대, 장남 우대의 경향이 생기고 제사상속의 경우는 장자봉사(長子奉祀)로 바뀌었다. 셋째, 가계계승을 위한 입양이 보편화되었으며 양자의 결정과정에 아내 쪽 친족(처족)의 참여는 제거되고 남편 쪽 친족의 의사만으로 결정되었다. 넷째, 족보는 자손보(子孫譜)의 성격이 없어져서 외손을 제거하고 동성동본 자손만을 수록하는 부계친만의 계보로 바뀌었다. 다섯째, 이와 같은 가족제의 급격한 변화로 인하여 동성자의 집단화․조직화를 통한 친족의 집단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조선 중기의 가족제도의 변화를 보는 데 있어서는 일차적으로 거주규정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 이전 시기에 장기간 지속되던 서류부가의 기간이 축소되어가는 현상을 살펴보면, 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알아내고 여타 가족제도의 측면이 상호 연관되어 변하는 현상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부계친족집단의 조직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비록 법제적인 측면에서 유교적 가족․친족의 원리가 제정되기는 하였으나 실제의 경우에는 비부계적 요소가 많이 존재함으로써 부계친만의 조직을 형성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도 없었고 또 형성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부계친’, ‘남자’, ‘장남’의 구심축에 의하여 부계친족집단을 조직하게 된 것은 가족제의 여러 측면에서 비부계적인 요소가 감소하고 부계적인 요소가 강화됨으로써 가능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핵심은 유교적 가족이념으로서, 이의 보편화 과정은 부계적 요소의 강화과정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조선 후기에는 실제와 법제와의 괴리 또는 불일치가 감소하고 상호 모순되는 가족원리의 충돌이 극소화되게 된다. 이는 외래적인 것의 체화를 통해 단순히 이념적으로만 존재하던 가족의식을 실제 생활을 통하여 구현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조선 후기의 가족의식은 이와 같은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즉 현재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이른바 ‘전통적’ 가족의식을 형성하게 된 것은 조선 후기 이후의 일인 것이다. 이와 같이 조선 후기에 형성된 가족의식은 일제강점기까지 거의 변화하지 않고 지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서구 중심의 외래적인 요소, 특히 핵가족 의식이 우리 사회에 유입되고 이것이 다른 영역의 근대적인 사회의식과 맞물리면서 새로운 가족의식이 많은 사람에게 내면화됨에 따라 다시 상반되는 두 가족원리의 긴장이 증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의 두 원리는 과거의 것과는 다른 것으로 대치된 것이다. 과거에 외래적인 것(중국)이 ‘부계적’인 원리를 제공했다면 이제 새롭게 도입되는 외래적인 요소(서구)는 ‘비부계적’인 원리를 형성하게 된다. 물론 이때의 비부계성은 과거의 비부계적인 것과는 구별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한편 조선 후기에 형성되어 한국인의 가족의식과 행위의 기준을 제공하고 있는 부계친족집단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사회구조의 변화와 이로 인한 동원 가능한 네트워크의 다양화로 말미암아 문중 자체의 기능이 변화하였고, 문중의 기능 변화로 인해 종래 강하게 작용하던 친족의 통제력이 약화됨은 물론 집단성도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이를 친족 성원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종래 친족 또는 가족 집단에 예속되어 있던 개인은 이제 그 독립성을 확보하게 됨으로써 가족의식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으며, 그에 일치하는 가족행동을 가능하게 하거나 적어도 일치시키고자 하는 열망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현대 가족들 사이에도 과거 시대의 가족과 마찬가지로 상호 불일치하는 두 원리와 이로 인한 가족의식의 충돌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상황이 부계적 요소와 비부계적 요소의 모순이라면 현대의 가족이 당면하는 혼란은 이른바 ‘전통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의 혼재로 특징지을 수 있다.
전통적 가족원리는 첫째 가족 안에 성․연령․세대별로 여러 층의 신분서열이 존재하며, 둘째 부부관계는 부자관계에 비하면 이차적인 의미를 가지고 지배․복종의 종적 관계로 이루어지고, 셋째 부모-자녀관계는 자식의 일방적인 효의 덕을 강조하는 권위․복종의 관계로 성립되며, 넷째 ‘개인’의 인격보다 가족이나 친족집단이 중요하고 우위에 서기 때문에 개인은 여기에서 독립될 수 없고 예속적 지위를 가질 수밖에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전근대적 가족원리에 입각한 가족체계는 공동체적 연대와 상호협조가 가능하고, 도덕적 가족부양 체제의 유지와 집단 내부의 강한 응집력을 보유하며, 가정교육과 사회통제에 있어서 유리하다는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반면에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가족질서로 인해 가족관계의 불평등성․비민주성이 내재하고 있고, 규범과 가족생활과의 괴리에 의해 세대간의 문화적 지체를 경험하며, 혈연중심의 가족이기주의가 나타나는 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근대적 가족원리는 첫째, 가족 성원은 상호 자유로운 인간의 대등한 결합으로 개개인의 인격의 독립이 확보되며, 둘째, 부부관계의 애정과 인격적 유대가 강조되고, 셋째, 가족 내의 민주적 질서와 상호 합리적 조정의 과정을 중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가족관계의 민주성과 평등성이 증가하고, 가족생활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개인의 근대적 인성교육(자율성과 주체성)이 가능하게 되는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근대적 사회질서의 병폐가 가족 내부에 반영되어 가족관계의 물신성 또는 상품화가 진전되었고, 개인주의에 의한 가족연대의 약화와 가족해체의 개연성이 증가하는 등의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두 가지 가족원리는 매우 상충되는 것이고 근본적으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성격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보았듯이 각각 장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므로 그 선택이 쉬운 일은 아니다. 더욱이 사회 성원의 가족의식 또는 가족관이 다양하게 분기되어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그 어려움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의 두 가지 가족원리의 상충은 가치의식과 가족행동 사이의 불일치를 가져오고 사람들로 하여금 갈등을 심하게 겪게 만드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현대의 두 원리의 대립은 가족의 행동과 의식상의 불일치를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가족문제를 인식하고 그에 대한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데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개항 이후 우리의 전통적인 가족제도와 가족의식은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가족원리가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근대계몽기를 거치면서 조혼, 축첩제, 과부개가 등을 둘러싼 전반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가족윤리의식이 크게 변화하게 되었으며, 한편으로 이를 둘러싼 가족갈등도 드러나고 있다. 또한 가족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두된 전반적인 개조론․개량론에서 핵심적인 개조의 대상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전통적인 부계 중심적 대가족제도, 종가 중심적 문중규범 등이 소가족을 지향하는 가족규범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서구적 핵가족 규범을 모방한 것이며, 일본식 호주가족제도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가족의 변화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나타났다. 하나는 서구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우리의 사회구조가 변동함으로써 야기된 제도적 측면의 근대화이고, 다른 하나는 서구의 근대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일어난 의식의 근대화이다. 전자는 우리나라가 과거의 자급자족적인 농경사회로부터 근대적인 산업국가로 변모하면서 가족집단이 이에 기능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제도적․법제적 변화이다. 후자는 주로 매스커뮤니케이션 및 학교교육을 통하여 서구의 남녀평등관․개인주의사상 등이 전파되면서 일어난 가족의식의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광복 이후에 더욱 가속화되었다.
오늘날 가족이 전통사회의 가족과 비교할 때 현저하게 변모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들의 가족생활 속에는 전통적인 요소가 남아있어서 서구적인 가족원리와 공존하고 있다. 이 양자는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로 합일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크게 갈등하면서 사회문제로 여론화되기도 한다. 가족제도와 가족의식의 관계도 전통사회에서와 같이 서로 일치하지만은 않는다. 의식은 서구적인 가족원리에 접근하면서 제도는 여전히 전통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이제까지의 현대 한국가족의 형태․행동․가치에 대한 여러 연구를 총괄하여 보면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한국의 전통적 가족의 형태는 부부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가족이 다수 존재하였지만 직계가족을 이상으로 하였는데, 이러한 직계가족이 점차 핵가족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 한국가족의 행동과 가치면에 있어서는 아직도 전통적 요소(다시 말하면 직계가족적 요소)가 많이 남아 있지만 그것이 비교적 빠른 속도로 변화하여 전반적으로 근대적 가족 행동 및 가치가 증가할 것이라는 점 등이 다수의 견해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금까지의 연구에 의해 밝혀진 산업화 이후 한국 가족의 변화 추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형태상의 단순화를 들 수 있는데 인원상 형태, 세대별 유형, 구성상 형태에서 모두 가족구성원의 인원수가 감소하고 세대수가 적어지며 구성범위가 축소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독신(비혼)과 이혼․재혼의 증가로 인하여 1인 가구, 한부모가족, 복합가족 등의 다양한 유형이 나타나고 있다.
가족행동 측면에서는 혼인․이혼․재혼 등 혼인 관련 행동에서의 개인적 선택 중시와 당사자 의견의 반영 증가, 가장 권위의 약화, 이혼율의 상승, 노인문제와 청소년문제의 증가, 세대간 단절의 문제 등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여러 가지 가족행동에 있어서의 변화의 방향은 서구의 핵가족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는 것과 같은 방향이다. 여기에 곁들여서 친족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여성의 탈가족화 현상으로 성역할 분담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노인인구의 급증과 맞물려 아동양육과 부모부양 행동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가족가치 및 태도의 변화는 형태와 행동의 변화에 비해 지체되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에서는 전근대적 가치가 지속되는 반면에 다른 한편에서는 근대를 넘어 탈근대적 가치까지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적 공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급격한 사회변동을 겪으면서 유교적 가족이념이 지속되는 가운데 도구주의 가족이념, 서정주의 가족이념, 개인주의 가족이념 등이 혼재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대체적인 변화 경향은 근대적 가치의 확산으로 볼 수 있으며, 형태와 행동과의 일치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가족 변동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한국의 가족은 그 제도면에서 핵가족화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현대 한국가족은 다양한 사회구조적 요인에 의해 변화하고 있다. 특히 낮은 혼인율(비혼)과 높은 이혼율, 저출산, 고령화 등의 인구학적 요인, 남성중심 가족제도의 변화 요인, 여성에게 유리한 정보화 요인 등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법제의 변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의 복리 향상과 양성평등한 가족제도의 정착을 목표로 오랜 기간 동안의 논의를 거쳐 2005년에 실현된 가족법의 개정을 들 수 있다. 그 주요한 내용은 호주제를 폐지하고(시행은 2008년부터), 금혼 범위를 합리적으로 축소하며, 자녀의 성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하고, 이혼 후의 양육과 친권문제에 있어서 국가의 후견인 기능을 강화하며, 친양자제도를 신설한 것 등이다. 이로 인하여 가부장적이고 부계혈통중심인 기존의 가족제도는 크게 변화할 것이다.
한국의 가족은 저출산과 소자녀화의 영향으로 규모가 축소되고, 핵가족 원리의 확산으로 구성이 단순화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형태가 단순화되고 규모가 축소되는 한편으로는 질적으로 다양한 새로운 가족이 등장하고 있다. 한 연구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가족을 언급하고 있다: 부부 역할 변화 가족, 떨어져 사는 부부, 심리적 별거 가족, 재혼 가족, 독신 가족, 이혼 모자가족, 무자녀 가족, 입양 가족, 통크(TONK, tow only no kids) 가족, 집단 가정, 장애인 가족, 폭력 가족 등.
이들 가족은 외형상으로는 부부, 부부+자녀 형으로 보이지만 가족관계의 질적인 양상은 각각 상이하다. 또 다른 한 연구서는 다양한 가족의 삶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독신, 혼외 동거, 동성애 가족, 입양 가족, 국제결혼 가족, 기러기 가족, 새터민 가족, 가상 가족. 이처럼 출산력 감소, 이혼율 증가, 독신과 만혼 현상, 여성의 탈가족화 등 개인의 자발적 선택에 의한 유연한 가족 구성과 행동의 가능성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가족 변화를 바라볼 때 단선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복잡성과 다양성, 그리고 다원화된 상태로 진행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객관적이다.
현재 주요한 가족문제로는 보육의 문제, 조기 유학과 기러기 가족을 포함하는 자녀 교육의 문제, 부모와 청소년자녀 세대간의 갈등 문제, 노인부양을 둘러싼 부모-자녀간의 세대갈등, 아동학대, 부부폭력, 노인학대, 이혼 등이 거론되고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취약한 장애인 가족, 입양 가족, 빈곤 가족, 북한이탈 가족 등에 대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급증하고 있는 결혼이민자 가족(국제결혼)과 그 결과 형성되는 다문화가족에 대해서는 다양한 대책이 마련되고 있다. 혼인관이 변화하고 이혼과 재혼, 그리고 다양한 혼인 형태가 증가함으로써 한 사람의 일생 동안 그의 가족이 고정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이제 가족은 닫힌 체계에서 열린 체계로 재구조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