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2책. 석인본. 1849년(헌종 15)에 그의 9세손 병진(秉鎭)이 산일된 유고를 모아 편집, 간행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36년에 후손 승규(昇圭)가 간행하였다. 권두에 임규직(任圭直)의 서문과 권말에 후손 승규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성균관대학교 도서관·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4는 시 542수, 권5는 소 3편, 묘표 1편, 인(引) 3편, 상량문 1편, 서(序) 2편, 조(詔) 1편, 격(檄)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서정시가 대부분인데, 그가 간관(諫官)으로 있을 때 광해군의 혼정을 강력히 비판하다가 추방당해 강촌에 묻혀 살았던 탓인지 시름에 싸인 회포를 자연에 반영시켜 읊은 것이 많다. 특히, 그의 생애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의 양란에 걸쳐 있으므로 국난에 피폐해진 당시의 상황을 추적해볼 수 있다. 또한, 중국의 화가인 금제(金禔)의 「사시산수도(四時山水圖)」, 곽희(郭熙)의 「강남도(江南圖)」와 우리나라 조선 초기 이징(李澄)의 「첩장도(疊嶂圖)」 등에 대한 화제(畫題)가 괄목할 만하다.
소 가운데 「동래부사상소(東萊府使上疏)」는 그가 동래부사로 있을 때 올린 글로, 당시 임진왜란을 겪고 난 뒤 백성들의 피폐해진 실정을 들어 부세를 감면해줄 것과, 또 당시 왜관(倭館)의 문제점을 논하면서 수영(水營)에 설치된 왜관의 불가함을 역설한 내용이다. 「목욕상소(沐浴上疏)」는 광해군 때의 계축사화의 전말을 밝히고, 아울러 그의 노병으로 인한 휴가를 요청하는 내용이다.
「영보정효등왕각체(永保亭效滕王閣體)」는 충청남도 부여에 있는 영보정에 대한 기문인데, 중국 왕발(王勃)이 지은 「등왕각서(滕王閣序)」의 체재를 모방한 작품으로, 문장이 매우 유명하다. 「이부학제영강정인(李副學題詠江亭引)」은 역시 부여에 있는 이경여(李敬輿)의 백마강정(白馬江亭)에 대한 악부체(樂府體)의 가사이다. 그밖에도 「수성격(愁城檄)」은 병법을 설파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