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창진 ()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아맹일고』 등을 저술한 학자.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97년(선조 30)
사망 연도
1683년(숙종 9)
본관
안동(安東)
출생지
미상
정의
조선 후기에, 『아맹일고』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동언(東彦). 아버지는 호군(護軍) 권덕영(權德榮)이며,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로 첨정(僉正) 남계홍(南繼洪)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 재주가 뛰어났고 6세 때부터 학업에 집념하였다. 김응조(金應祖)의 문하에서 수학, 1635년(인조 13)에는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다음 해 병자호란이 일어나 남한산성이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동지들과 의병을 일으켜 적과 싸울 목적으로 청풍까지 진출하였으나, 청나라에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산에 올라가 통곡하고 귀향하였다.

그 뒤 과업을 단념, 아맹(啞盲)이라 자호(自號)하고, 숭정처사(崇禎處士)로 은둔자적하며 일생을 보냈다. 81세가 되어 추은(推恩)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의 계자(階資: : 관리의 품계(品階)와 자급(資級))를 받았다. 저서로는 『아맹일고(啞盲逸稿)』 2권이 있다.

참고문헌

『아맹일고(啞盲逸稿)』
집필자
윤혁동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