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585년(선조 18) 7월에 개최된 기영회의 모습을 그린 필자 미상의 기록화이다. 화면 상단으로 부터 전서체(篆書體)의 제목, 그림, 참석자의 자필 찬시, 좌목(座目 : 서열을 적은 목록) 순으로 이루어진 계축(契軸) 형식이다.
좌목에는 좌의정 노수신(盧守愼), 우의정 정유길(鄭惟吉), 판중추부사 원혼(元混), 팔계군 정종영(鄭宗榮), 우찬성 심수경(沈守慶), 지중추부사 강섬(姜暹), 동지중추부사 임열(任說) 등 7인이 관직순으로 배열되었다. 이 그림은 노수신의 후손에 의해 보관되어 온 것이다.
기영회의 참가 자격은 시직(時職)과 산직(散職) 1·2품 중에서 나이가 70세 이상 된 자들이며 의정을 지낸 자는 70이 되지 않았지만 참여할 수 있었다.
기영회는 3월 3일(上巳)이나 9월 9일(重陽)에 모임을 갖는 것이 보통이며, 이때는 양로(養老)의 의미에서 왕이 승지(承旨)를 보내 일등악(一等樂)을 하사하고 선온(宣醞 : 임금이 신하에게 술을 하사하던 일 또는 그 술)하는 것이 관례였다.
1433년(세종 15년)에 처음으로 이러한 모임이 기영회란 이름으로 만들어졌으며 전란 중이거나 흉년이 들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숙종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기 전까지 꾸준히 실행되었다. 처음에는 기로회(耆老會)와 구별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17세기의 기영회는 기로회와 같은 의미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그림을 보면 배경을 배제시키고 건물을 가깝게 부각시켜 인물 위주로 이야기를 전개하였다. 때는 저녁인 듯 촛대가 설치된 실내에는 7명의 기영 노인들이 앉아 있다. 건물 밖에 자리한 11명의 악공의 연주에 맞추어 여기(女妓) 두 명이 춤을 추고 있다.
또 다른 두 명의 기녀는 주탁(酒卓)으로부터 술을 나르고 있다. 건물 중앙에 놓인 1쌍의 화준(花樽 : 꽃무늬가 있는 항아리)이 화면을 대칭으로 구성하는데 무게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기녀와 악공은 작게, 기영 노인은 보다 크게 묘사하여 계급에 따라 규모에 차이를 두는 고대 인물화의 기법을 보여 준다. 같은 내용의 그림이 서울대학교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소장되어 있다.
이 기영회가 열린 일시는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본의 화면 좌측에 쓰여 있는 ‘萬曆乙酉孟秋(만력을유맹추)’라는 구절에 의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