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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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인물
해방 이후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이칭
만정(晩汀)
이칭
김순옥(金順玉)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917년
사망 연도
1995년
출생지
전라북도 고창
내용 요약

김소희는 해방 이후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 보유자이다. 본명은 김순옥으로, 1917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나 1995년에 사망했다. 1930년에 명창 송만갑을 찾아가 판소리에 입문한 이후 정정렬 등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춘향가」와 「심청가」를 장기로 삼았으며 붙임새 운용에 변화가 많고 기교적이다. 고운 목소리를 가져 슬픈 대목이 많은 「심청가」도 서정적이고 청아하게 불렀다. 안향련, 안숙선, 신영희 등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국악 및 문화 예술 부문에서 활동으로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목차
정의
해방 이후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내용

본명은 김순옥(金順玉). 호는 만정(晩汀).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전라북도 고창 출신. 1932년 전남여자고등보통학교 2학년 수료하였고, 당대 명창 이화중선의 「추월만정」을 듣고 감동받아 판소리에 입문하였다.

1930년에 명창 송만갑을 찾아가 판소리에 입문하여, 단가「심청가」 몇 대목을 배웠다. 송만갑이 떠난 후 이화중선이 어린 김소희를 창극무대에 향단이 역으로 세상에 소개했다. 그 후 15세가 되던 해인 1932년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 온 지 한달여 만에 김소희는 한성준의 주선으로 방송에 출연했다.

1932년 전계문에게 주1주2를, 김용건에게 거문고와 주3을, 1933년 정경린에게 무용을 배웠다. 1934년 정정렬의 문하에서 판소리를, 김종기 명인에게 가야금을 배웠고, 1938년에는 박동실에게, 광복 후에는 정응민, 김여란, 정권진, 김연수한테서 판소리를 배웠다.

1930년 조선음률협회와 1934년 조선성악연구회에 참여하여 활동했고, 1948년에 사단법인 여성국악동호회 이사, 1954년에 민속예술원 원장, 1957년 대한국악원 이사, 1962년 국립창극단 부단장, 1962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주요 공연으로는 1949년 제9회 파리 국제민속예술제 참가 및 유럽 순회공연, 1964년 동경올림픽 공연, 1972년 미국 카네기홀 공연, 1976년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 순회공연, 1979년 국악생활 50주년 대공연, 1988년 서울올림픽 폐막공연 등이 있다.

김소희는 특히 「춘향가」와 「심청가」를 장기로 삼는데, 그는 소리뿐 아니라 각종 악기 연주와 춤, 서예에도 일가를 이룰 정도의 기량을 지니고 있다.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지정을 받았다.

수많은 제자를 길렀는데 안향련, 한농선, 박초선, 박송희, 김동애, 오정숙, 안숙선, 성창순, 남해성, 이일주, 신영희, 박양덕, 오정해 등이 김소희한테 판소리를 배웠다. 수많은 제자 가운데 안숙선이 김소희의 소리를 가장 잘 물려받은 명창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신영희는 2013년 중요무형문화재 김소희제 춘향가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김소희는 장단 붙임새 운용에 변화가 많고 매우 기교적이다. 슬픈 대목이 많은 「심청가」도 서정적이고 청아한 느낌이 나게 부를 정도로 고운 목소리를 가졌다. 김소희는 「들국화」같은 주4도 작곡한 바 있고,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국립창극단 공연시 편곡을 해주었으며, 「탕자가」 · 「부활가」같은 창작 판소리를 지어 부르기도 했다.

1932년 말에는 콜럼비아레코드사에서 처음으로 녹음하여, 1933년 상반기에 음반으로 나왔다. 이때 취입한 것은 단가, 「춘향가」, 「심청가」 등 유성기 음반 5면이다. 1934∼1935에는 오케레코드사에서 「심청가」, 「춘향가」, 민요 등 다수의 음반을 취입했는데, 유성기 음반이 17면으로 확인되었다.

1936년에는 빅타레코드사에서 「춘향가」 전집, 「춘향가」 중 ‘이별가’와 ‘옥중상봉’, 「춘향가」 중 ‘심봉사 황성 가는데’, 「적벽가」 중 ‘군사 설움타령’ 등을 녹음했다. 1959년 KBS레코드에서 제작된 해외 소개용 국악음반에 주5, 「심청가」 중 ‘범피중류’를 녹음했고,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뒤 문화재관리국에 「춘향가」 전 바탕을 녹음했다.

이 「춘향가」 전 바탕 녹음은 1976년에 문화재관리국에서 『한국전통음악대전집』에 담아 제작한 바 있고, 1988년 중앙일보사에서 『국악의 향연』 전집에 담아 제작하기도 했다. 1960∼1970년대에 지구레코드, 신세기레코드, 시대레코드, 힛트레코드, 현대음반, 미국 넘서치레코드 등 여러 음반회사에서 여러 장의 단가, 판소리, 창극, 민요음반을 냈고, 사가판으로 「심청가」(성음 4LP, 1974), 「춘향가」(성음 6LP, 1978)를 제작한 바 있다.

1931년 남원 춘향제 민속예술경연 1등상, 1959년 제4회 국악상(국악진흥회), 1962년 세계방송대상, 1966년 국전 서예 입선, 1968년 국전 서예 신인예술상, 1971년 제2회 아시아 음악제 방송 적합성 부문 우수상(유네스코), 1972년 문화예술진흥 공로상(문화공보부), 1973년 국민훈장 동백장, 1979년 국창기념비 건립헌수(고창 흥덕 청년회의소), 1982년 초대 한국국악대상, 198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1987년 남원시예술문화대상, 서울시문화상, 초대 동리대상, 1994년 제1회 방영일 국악상, 1995년 금관문화훈장 등이 주6되었다.

참고문헌

『우리 전통예인 백사람』(이규원, 현암사, 1995)
『김소희 판소리 일생』(지구레코드, 1997)
『카네기홀공연기념』(지구레코드 재판, 1996)
『SP시대의 판소리 여류명창들』 1 (신나라레코드, 1994)
『국악의 향연 음반 해설』(중앙일보사, 1988)
「1940년대 판소리와 창극 연구」(김민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3)
주석
주1

우리나라 전통 성악곡의 하나. 시조의 시를 5장 형식으로, 피리ㆍ젓대ㆍ가야금ㆍ거문고ㆍ해금 따위의 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부른다. 평조와 계면조 두 음계에 남창과 여창의 구분이 있다. 우리말샘

주2

고려 말기부터 발달하여 온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 초장, 중장, 종장의 3장 6구 4음보의 기본 형태를 가진 평시조와 파격의 엇시조, 사설시조로 나뉜다. 우리말샘

주3

채로 줄을 쳐서 소리를 내는 현악기의 하나. 사다리꼴의 오동나무 겹 널빤지에 받침을 세우고 놋쇠로 만든 줄을 열네 개 매어 대나무로 만든 채로 쳐서 소리를 낸다. 금속성의 맑은 음색을 지녀 현악 영산회상과 같은 관현악 또는 단소와의 병주(並奏) 따위에 쓰인다. 조선 영조 때 아라비아에서 청나라를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우리말샘

주4

조선 후기 이후에 생긴 민요. 아리랑, 사발가, 태평가, 오돌또기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5

전라도와 경상도 지방의 민요를 통틀어 이르는 말. 전라도 민요로 농부가와 육자배기ㆍ진도 아리랑ㆍ강강술래 따위가 있으며, 경상도 민요로 쾌지나 칭칭 나네와 성주풀이ㆍ밀양 아리랑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6

죽은 뒤에 관등을 올리거나 훈장 따위를 줌. 우리나라의 경우 긴급 상황에서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하다가 사망하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사회 전체의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된 사람, 생전에 큰 공을 세워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덕망을 갖춘 사람에게 준다. 우리말샘

집필자
현경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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