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천불전은 1811년의 화재로 불탄 뒤 1813년 중건되었다.
이곳에는 중앙에 목조석가여래삼존상이 있고 그 주위에 1000구의 석조여래좌상이 장엄하게 봉안되어 있다. 이 천불상은 천불전 중건의 주역이었던 완호(玩虎) 대사의 제자 풍계(楓溪) 대사 등이 경주 지역의 옥석으로 6년에 걸쳐 조성하였다고 한다.
1821년 풍계 대사가 쓴 『일본표해록(日本漂海錄)』에 의하면 천불이 완성되자 몇 척의 배에 나눠 싣고 울산을 거쳐 바닷길을 통하여 대흥사로 향했다 한다. 도중에 풍계 대사가 탄 배가 부산 동래 부근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일본 나가사키현에 닿았는데 일인들이 서둘러 절을 짓고 불상을 봉안하려고 하자 이 불상들이 꿈에 나타나, “우리는 지금 조선국 해남 대흥사로 가는 중이니 이곳에 봉안될 수 없다.”고 하여 결국 되돌려 보냈다 한다.
이 기록은 풍계가 몸소 표류를 겪은 내용 뿐만 아니라 일본의 풍토, 문물, 습속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언급되어 있다.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와 『동사열전(東師列傳)』에 기록되어 있다.
천불상은 모두 각각 다른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상호(相好 : 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훌륭한 용모와 형상)는 살이 많이 올라서 사각형에 가깝다. 머리에 중간 계주와 정상 계주가 있어 조선 후기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목은 짧고 등이 약간 굽은 듯하다.
귀는 길고 큰 편이서 유난히 강조되고 있다. 수인(手印)은 여러 가지 형식을 취하고 있어 천불상다운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자세는 모두 좌상이며, 무릎 높이가 전체 길이에 비해서 높은 편이다.
이 상들은 표면에 호분(湖粉 : 흰 가루)을 짙게 칠해서 흰색을 띄고 있다. 모두 노란색의 대의(大衣 : 설법을 하거나 걸식을 할 때 입는 중의 옷)를 별도로 만들어 걸치고 있다. 조성 시기가 19세기 전반기로 밝혀져 있어 이 시기의 불상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