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권 7책. 목판본. 본래 문인 유희춘(柳希春)이 간행할 계획을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뒤 1574년(선조 7) 문인 허충길(許忠吉)이 유고를 수집해 허엽(許曄)의 교열을 거쳐 편집, 간행하고, 의성서원(義城書院)에 판목을 장치하였다.
1687년(숙종 13) 박세채(朴世采)의 중간서문을 붙여 김구(金構)에 의해 용강서원(龍岡書院)에서 중간되었는데, 대개 초간본과 같다. 권두에 유희춘의 서문과 권말에 허엽의 발문이 있다.
권1∼8에 사(辭) 1편, 부(賦) 4편, 시 1,868수, 권9에 표전(表箋) 37편, 주(奏) 2편, 교서(敎書) 5편, 유서(諭書) 1편, 전지(傳旨) 2편, 서(書) 2편, 소장(疏狀) 4편, 의(議) 4편, 권10에 서계(書契) 11편, 잡저 11편, 권11에 기 16편, 서(序) 11편, 권12·13에 제발(題跋) 3편, 잠 2편, 명 2편, 송(頌) 1편, 축문 8편, 제문 6편, 신도비명(神道碑銘) 5편, 묘갈명 24편, 묘표 11편, 권14에 묘지명 15편, 행장 1편, 권15는 부록으로 행장·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사의 <신고당사 信古堂辭>는 구가체(謳歌體)에 의한 것으로 우정을 기리는 작품이다. 부의 <경운도부 慶雲圖賦>·<봉황지부 鳳凰池賦>·<복성부 復性賦>·<동매부 凍梅賦> 등도 모두 사조(詞藻 : 문장의 미사여구)가 강구된 역작들로 음조가 원활하다.
시에는 주로 감정에 따라 즉흥적으로 지은 것이 많다. 비교적 담담하면서도 정일(靜逸)한 가운데 억누를 수 없는 그윽한 흥취가 감도는 일면을 지니고 있다.
경상도 각 고을 학도들을 권계하는 <권성주학도 勸星州學徒> 등의 작품이 66수가 실려 있는데, 저자의 교육에 대한 이념과 열성이 나타나 있다.
그의 글 가운데는 일본사자(日本使者)와 수답한 것이 많은데, 그의 일본사신에 대한 태도는 간성(懇誠 : 간곡하고 성실함.)의 극치를 보인다.
그러나 <서일본인견폐도 書日本人犬吠圖>를 보면 일본에 대한 그의 관념은 존경보다는 비하하는 면이 강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일이 있었는데, 왕복 경로의 풍물을 읊은 것이 상당수 들어 있다.
주문(奏文) 가운데 <청견자제입학주 請遣子弟入學奏>는 조선 학생의 명나라 유학을 허용해 달라고 요구한 내용이다. 이것은 결국 실현을 보지 못했으나 당시 조선 지식인들의 여망의 일단을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이 주문에 언급된 조선 유학생 파견 목적은 경훈의리(經訓義理)와 문이한음(文移漢音) 등을 학습, 성취시키는 데 두고 있다.
교서 및 서계에는 <복일본국왕서 復日本國王書>·<복대마도서 復對馬島書> 등등 일본 및 대마도에 보내는 문서가 많이 들어 있다. 주로 교린 관계와 각기 자기 나라 국토 방위에 안전을 기하자는 내용이다. 이 시기 이 방면의 연구에 좋은 참고자료가 되고 있다.
의 가운데 <부경사신수매서책인반의 赴京使臣收買書冊印頒議>는 중국에 가는 사신을 시켜 서적을 사들여서 인출, 반포하자는 논의로 주의를 끈다.
여기에 제시, 해제된 책은 ≪춘추집해 春秋集解≫ 12책, ≪대명률독법 大明律讀法≫ 6책, ≪대명률직인 大明律直引≫ 4책, ≪여씨독시기 呂氏讀詩記≫ 10책, ≪고문관건 古文關鍵≫ 2책, ≪황극경세서설 黃極經世書說≫ 12책, ≪역경집설 易經集說≫ 14책, ≪지재집 止齋集≫ 8책, ≪상산집 象山集≫ 6책, ≪적성논간록 赤城論諫錄≫ 2책, ≪고문원 古文苑≫ 2책, ≪초씨역림 焦氏易林≫ 2책, ≪두시주해 杜詩註解≫ 4책, ≪산해관지 山海關誌≫ 2책, ≪안씨가훈 顔氏家訓≫ 2책이다. 특히 ≪춘추집해≫를 제일 먼저 인출할 것을 건의하고 있다.
이 밖에도 잡저의 <문위국막급어용인 問爲國莫急於用人>·<문아동국자라계침침상화풍 問我東國自羅季浸浸尙華風>·<문인정필자경계시 問仁政必自經界始> 등은 책제(策題)로서, 15, 16세기의 국외 정세 및 국내의 정치·경제·사회적 문제를 이해하는 데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