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미황사 응진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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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미황사 응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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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유적
문화재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미황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창건된 사찰건물.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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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미황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창건된 사찰건물. 보물.
개설

199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단층건물로, 지붕은 팔작지붕을 올렸다.

내용

미황사는 725년(성덕왕 24)에 창건되었는데, 1597년(선조 30)에 정유재란에 의해 불탄 뒤 1751년(영조 27)∼1754년에 복원되었다. 이 건물은 복원할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은 막돌허튼층 쌓기를 한 기단(基壇) 위에 자리하고 있다. 막돌 주춧돌 위에는 밑면을 그랭이질한 둥근 두리기둥이 세워져 있다. 네 귀퉁이의 귓기둥[隅柱]에는 귀솟음과 안쏠림을 주어서, 건물의 외관에 안정감을 갖추게 하였다. 가구(架構)는 5량(梁)인데, 평주(平柱) 위에 공포(栱包)를 얹었고, 대들보 위에는 짧은 동자기둥을 세워서 종보[宗樑]를 받치게 하였으며, 대들보 위는 우물천장으로 가렸다. 특히 건물 좌우의 옆면 협간(夾間)에는 퇴보인 충량(衝梁)이 대들보 위에 걸쳐져 있는데, 그 끝부분 역시 우물천장 속으로 숨었다.

공포는 기둥과 기둥 사이의 평방(平枋) 위에 1구(具)의 공간포를 둔 다포(多包)식으로, 출목수는 외3출목과 내4출목이다. 첨차(檐遮)와 살미[山彌]가 층층이 짜여진 1제공(諸貢)부터 3제공까지는 밑면에 꽃 무늬를 이어서 새긴 파련각(波蓮刻)의 앙서[仰舌]를 두었고, 4제공에는 쇠서 끝이 아래로 처진 파련각의 수서[垂舌]를 놓았다. 첨차는 둥글게 깎은 교두형(翹頭形)인데, 마구리는 네모에 가깝게 다듬어 고풍스럽다. 또한 내출목의 2제공까지는 교두로 만들었고, 그 위에는 파련각을 두어 구름 모양의 운공(雲工)을 이루고 있다. 창호는 빗꽃살창호이고, 건물 바닥에는 ‘정(井)’자형의 우물마루를 놓았다.

지붕의 가구는 처마 끝에 짤막한 서까래인 부연(浮椽)을 둔 겹처마인데, 추녀 부분에는 추녀가 뜨는 것을 막기 위해서 새발[鳥足]부연을 두었고, 부채살 모양의 선자서까래[扇子椽]의 끝부분은 처마 선을 만들기 위해서 가로로 놓은 평고대(平高臺)와 나란하게 절단하였다. 부연의 마구리를 네모나게 또는 길고 네모나게 마무리한 것은 고풍을 따르려는 것이다. 단청은 무늬와 색상이 잘 보존되어 있고, 포벽(包壁)과 벽체에 그려진 불화(佛畵)는 우수한 편이며, 본존불의 위에는 간략한 보개천장(寶蓋天障)이 설치되어 있다.

참고문헌

『건축문화재 해체수리 자료집』사찰건축편(국립문화재연구소 편, 국립문화재연구소, 2010)
『한국의 고건축』(국립문화재연구소 편, 국립문화재연구소, 1997)
『전남의 전통사찰』Ⅰ전통사찰총서 6(사찰문화연구원 편, 사찰문화연구원, 1996)
집필자
주남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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