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경초(景初), 호는 우헌(寓軒). 박수림(朴遂林)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봉산이씨(鳳山李氏)로 이부민(李傅敏)의 딸이다. 경전에 널리 통하였으며 특히 『대학』에 밝았다.
주희(朱熹)의 학문을 근본으로 삼고, 산수(山水) 사이의 고요함에 만족하였다. 청나라를 배척하고 명나라를 숭배하는 사상이 철저하여 병자·정묘 호란이 끝난 뒤 책력(冊曆) 속의 청나라 연호를 모두 지워버렸다고 한다.
1667년(현종 8) 배를 타고 망명해 온 명나라의 유민들을 조정에서 체포하여 청나라로 돌려보내자, 이를 개탄하는 시를 짓고 당세에의 뜻을 끊어버렸다. 그 뒤 『태극도설(太極圖說)』·『통서(通書)』·『황극경세(皇極經世)』·『역학계몽(易學啓蒙)』 등의 성리서를 깊이 연구하여 『음양소장도(陰陽消長圖)』를 저술하였다.
정이(程頤)·주희(朱熹)·이황(李滉)·이이(李珥)를 높이 받들었으나, 사단칠정설(四端七情說)만은 이황의 설을 버리고 이이의 설을 따랐으며, 예학은 김장생(金長生)을 따랐다. 뒤에 장령(掌令)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우헌집(寓軒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