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성(密城). 자는 백옹(伯翁), 호는 진계(進溪). 아버지는 좌승지에 추증된 박시묵(朴時默)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병영(李秉瑩)의 딸이다. 유치명(柳致明), 허전(許傳) 등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박재형은 학문이란 ‘경(敬)’자에 달렸다고 말하고 선유(先儒)들이 경(敬)자를 의론한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들고 제목을 『집경요람(執敬要覽)』이라 하였으며, 신라·고려·조선시대 유현(儒賢)들의 서론(緖論)과 현인군자(賢人君子)·절부(節婦)·의사(義士) 들의 사행(事行)으로서 세상에 모범이 될만한 것들을 수집하여 『해동속소학(海東續小學)』 6권을 편찬하였다.
선대의 유문(遺文)이나 필찰(筆札), 사우(師友)들의 수필(手筆) 등을 편집하여 14권으로 만들고, 『척독유편(尺牘類編)』이라 편제(編題)하였다.
말년에는 도백(道伯, 관찰사의 이칭)과 직지(直指, 암행어사의 이칭)가 여러 번 박재형의 훌륭한 행실을 들어 포상할 것을 임금에게 건의하였으며, 1898년에는 의령원참봉(懿寧園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1900년 8월 적당(賊黨)의 변란으로 거제(巨濟)에서 세상을 마치자, 남녀노소 원근사우(遠近士友)들까지도 박재형의 죽음을 애통해 하였다. 저서로는 『진계문집(進溪文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