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지장사 석조 지장보살 좌상 ( )

목차
관련 정보
대구 북지장사 석조지장보살좌상
대구 북지장사 석조지장보살좌상
조각
유물
문화재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에 북지장사의 대웅전에 있는 고려시대의 보살상.
목차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에 북지장사의 대웅전에 있는 고려시대의 보살상.
내용

높이 110cm. 1988년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대웅전 안에 아미타삼존불과 함께 봉안되어 있다. 이 불상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지금의 대웅전 뒤쪽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이며, 약 50년 전에 폭우로 인하여 지표에 노출되어 발견되었다 한다. 그리고 옮겨 놓을 때부터 대좌(對坐) 및 광배석(光背石)은 없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땅속에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인지 파손된 부분이 거의 없이 잘 보존되어 있다.

머리는 삭발하였고 얼굴은 갸름하다. 눈썹에서 입까지 이어지는 선의 표현이 너무 강하고 분명해서 상호(相好 : 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훌륭한 용모와 형상)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경직되었다. 이마 한가운데에는 큼직한 백호공(白毫孔)이 새겨져 있다. 귀는 크고 길며 목에는 삼도(三道)의 표시가 뚜렷하다.

다소 각이 진 어깨는 넓고 반듯해서 당당하다. 하지만 가슴은 편평하고 결가부좌한 하체에도 양감의 표현이 부족해서 전체적으로 평면적인 느낌을 준다. 오른손은 조각이 부자연스러운 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왼손은 가슴 앞에서 보주(寶珠)를 받쳐 들고 있다.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한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는 V자형으로 가슴을 열었고, 옷깃을 오른쪽으로 여미었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남원 선원사(禪院寺) 철조여래좌상(보물, 1965년 지정)의 법의 표현과 유사하다. 아래로 흘러내린 옷자락은 결가부좌한 발 사이에서 부채꼴 형태를 이루었다.

그리고 왼쪽 팔 위로 넘겨진 옷자락은 무릎 위로 동심원을 이루며 흘러내렸다. 왼쪽 어깨 뒤로 넘어가는 옷깃은 반전되었으며, 가슴에는 내의를 표현하였다. 이 불상은 앉은 자세나 수인(手印), 옷주름의 표현 등이 통일신라시대 작품인 안동 안기동 석조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과 유사하다.

그러나 옷주름 선이 보다 더 간략한 음각선으로 조각되어 섬약하고 형식적이다. 손이나 어깨 등에서는 부자연스러운 표현이 보인다. 그리고 신체도 괴체화(塊體化 : 덩어리 모양이 됨.)되었기 때문에 조성 시기는 고려시대라 생각된다. 현재 이 불상의 얼굴과 가슴, 양손과 발에는 도금 및 채색이 되어 있고, 그 이외의 전신은 호분(湖粉 : 흰 가루)으로 덧칠해져 있다.

참고문헌

『팔공산』(대구직할시·경북대학교, 1987)
『북지장사』(대구직할시·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0)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임석규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