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현사 ()

목차
유교
의례·행사
중국 진나라의 태학생 동양(董養), 당나라의 태학생 하번(何蕃), 송나라의 태학생 진동(陳東) · 구양철(歐陽澈) 등을 배향한 사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중국 진나라의 태학생 동양(董養), 당나라의 태학생 하번(何蕃), 송나라의 태학생 진동(陳東) · 구양철(歐陽澈) 등을 배향한 사우.
내용

서울문묘(文廟)의 동쪽에 있었다. 이들은 모두 태학생으로 있을 때 국가의 변란에 처하여 정의(正義)를 주장, 국난을 극복하게 한 충의지사(忠義之士)들로서 성균관의 태학생들로 하여금 규범을 삼도록 하기 위하여 숙종 때 사우 건립을 논의, 1725년(영조 1) 12월에 완공하고 이들을 봉안하였다.

처음 숭절사(崇節祠)라 하였으나, 1764년영조가 ‘四賢祠(사현사)’라 어필로 사액하였다. 2월과 8월의 중정일(中丁日)에 향사(享祀)하다가 6·25를 전후하여 훼철되었다.

참고문헌

『태학지(太學志)』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