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고려시대에 교수를 지낸 홍준(洪濬)이 나라가 장차 개혁에 휩싸일 것을 동감하고, 이곳에 내려와 처소를 정하면서 1388년(우왕 14)에 지었다는 것으로서, 지금 건물은 최근에 중수한 것이다.
3단의 잡석 기단 위에 세워진 이 건물은 10개의 홀림기둥으로 이루어진 구조이다. 평면은 좌우 1칸에서만 출입할 수 있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계자난간(鷄子欄干)으로 처리하였으며, 바닥에는 모두 마루를 깔았다.
공포(栱包) 형식은 좀 특이하여 무익공(無翼工) 양식을 취하고 있는데, 직절(直切)되어 방형을 이룬 양두(樑頭) 위에도 기둥 사이마다 받침이 있는 화반(花盤)을 놓고, 그 위에 다시 3개의 소로[小累]를 놓아 창방(昌坊)과 장혀[長舌]의 간격이 커서 건물이 더욱 높아졌다.
공포 내부는 주심포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인데, 기둥머리와 주두(柱頭) 사이에 안겹처마로서 합각(合閣)마루를, 추녀마루 끝에는 기와를 더 쌓아 곡선미를 더해주고 있는 건물이다.
당내(堂內)에는 이색(李穡)의 시판(詩板)이 있고, 두 개의 ‘敎授堂(교수당)’ 현판은 박충식(朴忠植)이 썼으며, 1980년에 남양홍씨교수공파종회(南陽洪氏敎授公派宗會)에서 쓴 교수당실기(敎授堂實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