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야성(冶城). 자는 문성(文星), 호는 응봉(鷹峯). 아버지는 진사 송상헌(宋尙憲)이며, 어머니는 선성김씨(宣城金氏)로 교수(敎授) 김우인(金友仁)의 딸이다. 작은아버지 송남파(宋南坡)의 문하에서 수학, 퇴도(退陶)의 학문에 힘썼다.
1657년(효종 8) 사마시에 합격하고, 1663년(현종 4) 전시에서 장원으로 발탁되어 승문원에 배속되었다. 1669년 박사로 승진하였고, 다음 해에 가주서(假注書), 1671년에 정언, 1673년 승정원주서를 역임하였고, 이조의 좌랑·정랑을 거쳐 1675년 순천부사가 되었다.
그 뒤 장악원별제(掌樂院別提)·대구부사·단천부사 등을 거쳐서 다시 악정(樂正)이 되었는데, 이 때 시국이 소란하자 자청하여 영암재(靈巖宰)로 파견나갔다.
그 뒤 민비(閔妃)가 환가하고 박태보(朴泰輔)가 직언하다가 장살되는 등 어려운 때에 다시 헌납이 되었다가 청송부사로 파견되었다. 1693년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가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저서로는 『응봉유고(鷹峯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