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흥록 ()

목차
국악
인물
조선후기 판소리의 중시조 또는 가왕으로 꼽히는 판소리의 명창.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80년경
목차
정의
조선후기 판소리의 중시조 또는 가왕으로 꼽히는 판소리의 명창.
개설

8명창 가운데 한 사람이다. 판소리의 중시조 또는 가왕(歌王)으로 꼽히고 있다.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웅포리 양지편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판소리의 진양조를 창시한 김성옥(金成玉)은 그의 매부이고, 광록(光祿)은 동생이다.

그는 역대의 판소리 명창 가운데 기량이 가장 뛰어날 뿐만 아니라, 판소리에 그때까지 없었던 진양장단을 도입하여 소리를 짜고 평타령으로 일관되었던 원초적인 판소리 선율 우조(羽調)와 계면조(界面調)의 선율을 오늘날과 같이 발전시켰다.

계면조는 본래 남도무가(南道巫歌)나 민요에 있는 육자배기토리를 가리키는 것이며, 민요나 무가에서는 단순한 선율형태를 가지나 판소리에서는 매우 복잡한 선율이 많다. 계면조 선율에 이와 같은 정교한 선율형태를 도입한 것이 송흥록으로 보이며, 그가 잘하였다는 귀신의 울음소리, 즉 귀곡성(鬼哭聲)도 따지고 보면 계면조 선율의 교묘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우조는 가곡·가사에서 보이는 정가(正歌)의 선율을 판소리화한 것인데, 판소리에서 우조의 선율은 정가의 선율과 다른 판소리적인 특이한 선율이 구사된다. 이 판소리 우조선율의 특성이 송흥록에 의해서 확립된 것으로 보인다.

원초의 판소리는 중중모리·중모리·자진모리 장단으로 짜여졌던 것으로 보이는데, 송흥록이 판소리에 음악적인 변화를 주기 위하여 느린 진양장단을 도입하였다. 송흥록이 판소리의 속도 영역을 확대함으로써 속도의 변화를 더욱 다채롭게 하고, 우조와 계면조로 선법적(旋法的)인 변화 및 판소리 음악의 정조(情調)의 변화를 더욱 다채롭게 하였다.

이와 같이, 장단의 변화, 조의 변화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송흥록의 판소리를 두고 당시의 사람들은 ‘여산폭포(廬山瀑布)’·‘호풍환우(呼風喚雨)’·‘천변만화(千變萬化)’라 하였다. 신재효(申在孝)는 <광대가>에서 “송선달 흥록이는 타성주옥(唾成珠玉) 방약무인(傍若無人) 화란춘성(花爛春城) 만화방창(萬化方暢) 시중천자(詩中天子) 이태백(李太白)이라.” 하였는데, 만화방창하다는 것도 그의 변화무쌍한 판소리 기교를 두고 이른 것이라 하겠다.

기량이 출중하고 판소리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기에 독보건곤(獨步乾坤)이라는 칭호를 받았고, 신재효도 그를 시중천자로 꼽히는 이태백에 비유하였던 것이다. 모든 판소리에 뛰어났으나 그 중 <변강쇠타령>·<춘향가>·<적벽가>를 잘하였는데, 특히 <춘향가> 중 ‘옥중가’는 오늘날까지 전해지며 이 대목의 귀곡성이 유명하다.

또한 동편제 판소리를 확립하여 동편제 소리의 시조로도 꼽힌다. 그의 소리는 동생 광록과 수제자 박만순(朴萬順)에게 전승되었다.

참고문헌

『조선창극사』(정로식, 조선일보사 출판부, 1940)
『판소리소사』(박황, 신구문화사, 1974)
『한국의 판소리』(정병욱, 집문당, 1981)
「"가왕" 송흥록 생애사의 종합적 고찰」(허정주, 『판소리연구』33, 2012)
「판소리팔명창음악론」(이보형, 『문화재』 8, 문화재관리국, 1974)
집필자
이보형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