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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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암화상 신미 진영
수암화상 신미 진영
불교
인물
조선전기 선교도총섭를 역임한 승려.
이칭
혜각존자(慧覺尊者)
이칭
김수성(金守省)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영동(永同)
주요 관직
선교도총섭
목차
정의
조선전기 선교도총섭를 역임한 승려.
내용

본명은 김수성(金守省). 본관은 영동(永同). 아버지는 옥구진(沃溝鎭) 병사였던 김훈(金訓)이며, 동생은 유생이면서도 숭불을 주장했던 김수온(金守溫)이다.

세조 때의 선승(禪僧)인데, 행장은 전하지 않으나 왕실과의 관계 속에서 행해진 불교 중흥의 기록들을 통하여 그 행적을 살필 수 있다.

속리사(俗離寺) 현재의 법주사에 출가하여 사미(沙彌) 시절에 수미(守眉)와 함께 대장경을 읽고 율을 익혔다. 그 뒤 세종 말년에 왕을 도와 불사를 중흥시켰다. 세종은 말년에 두 왕자와 왕후를 3년 사이에 잃게 되자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신불(信佛)하였다.

이 때 신미와 김수온은 세종을 도와 내원당(內願堂)을 궁 안에 짓고 법요(法要)를 주관하는 등 불교를 일으키기에 노력하였다. 또한, 세종을 도와 복천사(福泉寺)를 중수하고 그곳에 아미타삼존불을 봉안하였다.

문종은 선왕의 뜻을 이어 그를 선교도총섭(禪敎都摠攝)에 임명하였다. 세조 때는 왕사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세조는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그를 경애하였고, 왕위에 오르자 불교의 중흥을 주관하게 하였다.

1458년(세조 4)에 나라에서 해인사에 있던 대장경 50부를 간행하고자 했을 때 이를 감독하였고, 1461년 6월에 왕명으로 간경도감을 설치하여 훈민정음을 널리 유통시키기 위해 불전(佛典)을 번역, 간행했을 때도 이를 주관하였다.

그의 주관 아래 『법화경』 · 『반야심경』 · 『영가집(永嘉集)』 등이 언해되었으며, 함허(涵虛) 기화(己和)『금강경오가해설의(金剛經五家解說誼)』도 교정하여 간행하는 등 불전의 국역과 유통을 위한 막중한 역할을 하였다.

1464년 2월 세조가 속리산 복천사로 행차하였을 때 그곳에서 사지(斯智) · 학열(學悅) · 학조(學祖) 등과 함께 대설법회(大說法會)를 열었다.

또한, 같은 해에 상원사(上院寺)로 옮겨 왕에게 상원사의 중창을 건의하였고, 이에 왕은 「오대산상원사중창권선문(五臺山上院寺重創勸善文)」을 지어 이를 시행하도록 하였는데, 이 권선문에는 그에 대한 왕의 존경심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세조는 혜각존자(慧覺尊者)라는 호를 내리고 존경하였다.

참고문헌

『동사열전(東師列傳)』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이능화, 신문관,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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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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