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응우(應遇), 호는 죽재(竹齋). 양치(楊治)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양제달(楊悌達)이고, 아버지는 돈녕주부(敦寧主簿) 양희수(楊希洙)이다. 어머니는 송환정(宋環貞)의 딸이다. 양사언(楊士彦)의 아우이다.
1552년(명종 7)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호조좌랑을 거쳐 원주·부평 등 7읍(邑)의 수령(守令)을 역임하였다. 가는 곳마다 청백(淸白)하여 칭송을 받았다.
선조가 등극한 뒤 소를 올려, 외적의 침범에 대한 방어대책을 진언했는데 과연 뒷날 그 예언이 맞아들었다. 1586년 병으로 앓아눕게 되자 스스로 죽을 날을 점쳤는데, 틀림없이 그 날에 나이 56세로 죽었다.
시에도 뛰어났으며, 형 양사준(楊士俊)·양사언 등 세 형제가 모두 대과에 급제하고 문필에 뛰어나 세상에 평판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