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선림원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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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선림원지
양양 선림원지
건축
유적
국가유산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서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순응이 창건한 선림원의 사찰터.
시도자연유산
지정 명칭
양양선림원지(襄陽禪林院址)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지정기관
강원특별자치도
종목
강원특별자치도 시도기념물(1982년 11월 03일 지정)
소재지
강원 양양군 서면 서림리 424번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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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서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순응이 창건한 선림원의 사찰터.
내용

1982년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선림원은 동국대학교 발굴조사단이 1985년 7월부터 1986년 8월에 걸쳐 이 사찰을 발굴한 결과 해인사를 창건한 순응법사(順應法師) 등이 창건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광복 직후 출토된 신라범종의 범종명문(梵鐘銘文)에 의하면, 해인사를 창건한 순응법사 등이 참여하고 있어서, 이 사찰이 종이 만들어진 804년(애장왕 5)경에 해인사 등 화엄종계통에서 조성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발굴시 출토된 초창기 때의 기와로 보아 적어도 9세기 초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찰이 획기적인 변모를 겪게 된 것은 9세기 중엽경으로 추정된다. 즉 홍각선사(弘覺禪師)라는 분이 이곳에 주석(駐錫 : 중이 입산하여 안주함.)하면서 외형적으로 대대적인 중창불사(重創佛事)를 하게 되고, 내면적으로는 화엄종이 아닌 선종으로 전향하게 된 것으로 믿어진다.

오늘날 남아 있는 유물들인 삼층석탑 · 승탑 · 석등 · 비석귀부는 물론 발굴 때 대량 출토된 기와들이 모두 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9세기 후반경에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찰은 중창 후 얼마 되지 않아서 태풍과 대홍수로 산이 무너져내려 금당 · 조사당 등 중요건물들을 덮어버렸기 때문에 폐사된 뒤 다시는 복원되지 않은 듯하다. 따라서 발굴 때 당시 각종 기와들이 고스란히 출토되었던 것이다.

이 사찰의 가람배치는 3층석탑 뒤에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금당건물이 배치되었는데 주춧돌이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오른쪽에 금당과 잇대어 또 하나의 건물지가 있다.

서편 언덕 위에는 석등이 놓여 있고 석등 북쪽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지가 발굴되었는데, 이 옆에 홍각선사탑비(보물, 1966년 지정)가 남아 있어서 조사당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넓은 광장에는 승방 등 많은 건물지들이 확인되는데 이곳 입구에 중문(中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림원에는 일괄 1966년 보물로 지정된 선림원지삼층석탑 · 선림원지석등 · 선림원지부도 · 선림원지홍각선사탑비 등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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