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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암삼충각(靈岩三忠閣)

    건축문화재 | 유적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있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세 부자 관련 정려각.   시도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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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영암삼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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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있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세 부자 관련 정려각.시도기념물.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정면 3칸, 측면 1칸의 2익공 맞배지붕건물. 전라남도 기념물 제108호. 임진왜란 때 명량전투에서 순절한 박형준(朴亨俊)과 그의 아들 효남(孝男)·호남(好男) 등 세 부자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정려이다. 1849년(헌종 12) 도유(道儒)가 발의하여 상소하자 1860년(철종 11) 명정이 내려졌다.
    구무재(舊武齋) 박형준은 조헌(趙憲)의 문인으로서, 예안 현감으로 있을 때 향곡(餉穀)을 거두지 못했다 하여 영암으로 유배되었다가 그 다음해에 풀려났으나 이곳에서 은거하였다. 그 뒤 왜적의 침입이 빈번해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들 세 부자는 이충무공의 휘하로 들어가 명량전투에서 순절하였다. 이리하여 세 부자가 모두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선되었다.
    삼충각은 1901년과 1932년에 개수한 뒤 1946년에 중건하였으며, 현재의 건물은 1982년에 중수된 것이다. 막돌초석 위에 원통형의 두리기둥을 세우고 그 머리는 창방(昌枋)으로 결구하였으며, 창방과 주심도리의 장여 사이에는 소로를 3개씩 배치하였다.
    공포는 앙서와 수서 하나씩을 낸 2익공양식으로, 아래 쇠서 위에는 초각된 연봉(蓮峰)이 하나씩 놓여 있다. 가구는 전후방 평주 위에 대량을 걸고 그 위에 사다리꼴의 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게 한 3량구조이며, 도리는 장여로 받쳐진 굴도리를 사용하였다.
    이 건물의 내부에는 명정판액(銘旌板額) 3매와 비 1기가 있으며, 전통적인 정려의 건축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박씨삼충전(朴氏三忠傳)의 기록이 남아 있는 『삼충록 三忠錄』(1846년) 3책이 필사본으로 남아 있다. 그 밖에도 『계하사목 啓下事目』·『삼충사행장 三忠祠行狀』·『삼충사건유사기 三忠祠建有司記』 등 관련자료가 함께 소장되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8년)
    천득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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