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조선 초 문신인 하정유관(柳寬; 1346∼1433)이 주위 경치에 감탄하여 아들 맹문에게 짓도록 한 정자이다. 1987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전라도 관찰사 유관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그의 아들 맹문(孟聞)에게 명하여 1406년(태종 6)에 건립하였는데, 그후 여러 차례 중·개수가 이루어지다가 현재 규모로 중창된 것은 1689년(숙종 15) 영의정을 지냈던 유상운(柳尙運)에 의해서였다.
처음에는 모산리의 ‘모’자와 호인 하정의 ‘정’자를 따서 ‘모정(茅亭)’이라고 불렀으나, 훗날 율곡이이·고경명·남이공·유상운 등이 주변경관을 팔영시(八詠詩)로 읊어서 ‘영팔정’으로 바뀌었다. 숙종 15년(1689)에 영의정을 지낸 유상운이 건물을 고친 것 외에는 수리한 내력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정자는 앞면 3칸·옆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건물로 내부는 방이나 벽체없이 사방이 개방된 정사각형 평면이며, 마루는 우물마루이다. 동측에만 간단한 평난간(平欄干)을 두었고, 전면 기둥에는 주련(柱聯)을 걸었다. 구조형식은 목조가구로서 평탄한 대지위에 약 3척 높이의 막돌허튼층쌓기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에는 주두(柱頭 : 대접받침) 없이 보머리를 상투걸이 기법으로 결구하였다. 보 밑에는, 기둥 외부를 곧게 절단하고 내부에는 비스듬히 절단한 간결한 보아지를 두었다.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이다. 가구형식은 5량가(樑架)로서 전후 평주(平柱) 위에 대들보를 걸고 짧은 동자주(童子柱)를 세워 종보[宗樑]를 걸었으며, 그 위에는 초각(草刻)된 판대공(板臺工)과 소로[小累]를 댄 행공첨차(行工檐遮)를 직교하여 짜서 종도리를 안정되게 받치게 하였다. 충량(衝樑) 위에는 외기(外機)가 직접 끼워지며, 외기중도리 모서리기둥 밖의 왕지 부분에는 짧게 내린 달동자[懸童子]를 두고 있다.
후대에 많은 변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팔정의 현판 글씨는 남구만이 썼다. 정자 안에는 제영문(題詠文)·기문(記文) 현판과 동계책(洞契冊)이 보관되어 있다. 제영문으로는 이이·고경명·유상운 등의 『저산팔경』·『저산정기』·『상계문』등과 주련 4개가 있다. 현존하는『저산동약』은 지방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여서 주목된다.
관련 유적으로는 분비재(憤悱齋, 1643년)·죽봉사(竹峯祠, 1796년)가 있고, 마을 어귀에는 유관의 신도비가 있다.
양팔정은 본래 사정(私亭)으로서 지어졌으나 강학 장소 또는 향약의 집합소로도 이용되어 오랜 세월동안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모임을 갖던 건물로서도 그 역사적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