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갑사지 석불 좌상 ( )

목차
관련 정보
오갑사지 석불좌상
오갑사지 석불좌상
조각
유물
문화재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모점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목차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모점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내용

높이 1.65m. 1984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여래상은 오갑산(烏岬山) 자락 아래에 위치한 동막마을 어구를 들어서면 곧바로 북편 언덕바지에 자리 잡고 있다.

불신(佛身)과 대좌(臺座)를 갖춘 아담한 체구의 좌상이다. 머리와 얼굴의 일부가 훼손된 것을 제외하면 보존이 극히 양호한 수작이다. 여래상의 얼굴은 둥근 방형(方形 : 네모반듯한 모양)으로 온화하면서도 예쁜 상호(相好 : 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훌륭한 용모와 형상)를 보여 준다.

나발(螺髮 : 부처의 머리카락.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의 머리는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깨어져 나갔다. 미간 사이로 백호(白毫 : 부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를 제외한 각부 표현은 극히 정제되어 있다.

날렵하게 호(弧 : 활)를 그리고 있는 눈썹이 선명하고 부푼 눈두덩 아래 두 눈은 매끄럽게 팠다. 코는 거의 마멸되어 알아보기 힘든 상태이다. 가볍게 다물고 있는 작은 입술에는 엷은 미소가 어려 있다. 알맞게 부푼 양 볼이 이루고 있는 골격은 단정하다. 기름한 귀는 어깨까지 늘어졌고 목에는 삼도(三道)를 선명하게 새겨졌다.

불신은 견고한 어깨와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넓은 무릎이 이루는 안정된 비례를 보여 준다. 존안(尊顔)에 이어 뛰어난 조각 솜씨를 유감 없이 발휘하고 있다. 우견 편단(右肩偏袒 : 오른쪽 어깨가 드러남)의 대의(大衣 : 설법을 하거나 걸식을 할 때 입는 중의 옷)는 왼 어깨에서 부드럽게 층단을 이루며 흘러내렸다. 그리고 옷자락은 손목을 감아 무릎 위로 활짝 펼쳐졌다.

U자형으로 깊숙이 판 상체는 적당하게 살이 오른 양 가슴과 오른 어깨의 탄력 넘치는 양감을 드러낸다. 아래로는 무릎을 감싼 군의(裙衣) 자락이 좌우 대칭의 융기선을 이루며 흘러내린다. 그리고 양 발밑에서 부채꼴로 곱게 접혀진다. 양손은 손목에서 결실되었다. 연결부를 감안할 때 각기 무릎과 복부에 내려놓은 촉지인(觸地印)을 결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불상의 대좌는 상대석 · 중대석 · 하대석의 3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돋을새김이 화려한 상대석에는 세 겹의 앙련(仰蓮 : 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이 빙 둘러 배치되었다. 팔각의 중대석은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면석(面石)으로 간결하게 구성되었다. 하대석에는 안상(眼象)과 두 겹의 복련(覆蓮 :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을 정교하게 조각하였다.

불상의 뒷면에는 광배(光背 :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를 장치했던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남아 있다. 전방으로 펼쳐진 2단으로 이루어진 밭에서 고려시대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는 와편(瓦片)이 다량으로 발견된다. 이 점 또한 편년의 한 기준이 된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사지(寺誌)』(충청북도, 1982)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최성은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