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경윤(景潤). 지평(持平) 임중(任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도승지 임상원(任相元)이고, 아버지는 임수조(任守朝)이며, 어머니는 조적명(趙迪明)의 딸이다.
1742년(영조 18)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46년에는 설서(說書)를 지냈으며, 이듬해에는 설서·정언(正言)을 역임하였다. 1748년에는 해서(海西) 지방의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그곳의 실정을 면밀히 파악하기도 하였다.
1750년에는 문학(文學)을 지냈고, 1752년에는 헌납(獻納)을 지냈으며, 이듬해에는 장령(掌令)·집의(執義)를 역임하였다.
1754년에는 승지에 임명되어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였으며, 이듬해에는 대사간을 지내면서 청나라 사신에게 군사 기밀을 누설한 종성부사(鍾城府使) 이사조(李師祚)와 북병사(北兵使) 이태상(李態祥)을 중벌에 처할 것을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