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궁리 석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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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재궁리 석등 정측면
김제 재궁리 석등 정측면
건축
유적
국가유산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재궁마을에 있는 조선전기 제11대 중종이 하사한 석등.
이칭
이칭
김제재궁리석등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재궁리석등(齋宮里石燈)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석등
지정기관
전북특별자치도
종목
전북특별자치도 시도유형문화유산(1976년 04월 02일 지정)
소재지
전북 김제시 월촌면 450-2번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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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재궁마을에 있는 조선전기 제11대 중종이 하사한 석등.
내용

높이 186㎝. 1976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계맹(李繼孟)이 1484년(성종 15) 사마양시(司馬兩試)에 합격하고, 1489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른 후 광국공신(匡國功臣)이 되자 종중이 하사한 석등으로,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석등과는 매우 다른 양식을 보이고 있다.

옥개석의 한 변 길이가 79㎝로, 지대석은 묻혀 있고 옥개석과 간주석(竿柱石)만을 볼 수 있는데 간주석과 화사석(火舍石 : 점등하는 부분)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다. 4각형의 간주석은 옥개석의 크기에 비해 짧으며, 중앙 부분은 잘록하게 만들어졌다.

맨 밑에 좌대석 하단 4면에 안상(眼象)을 새기고 그 안에는 화판(花瓣)을 조각하였는데, 잘록한 중석의 4면에도 역시 안상을 넣었다. 화사석의 네 면에는 화창(火窓)을 두었고, 옥개석은 일반적인 석등 형식과는 달리 4면에 같은 형식으로 팔작지붕 형태를 취하였으며, 반전(反轉)이 심하고 처마 밑은 수평이 아니라 전각(轉角)을 따라 치켜올렸다.

옥개석 위에는 연봉오리형의 보주(寶珠)가 투박하게 표현되었다. 이 석등의 전체적인 형식은 간주석에 비해 옥개석이 지나치게 커서 둔중한 감을 주고 있는데, 조선 중기의 석등으로 알려진 전북특별자치도 구례군 산동면 이평리에 있는 윤문효공묘(尹文孝公墓) 앞에 있는 석등(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조선 중기의 석등양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문화재지(文化財誌)』(전라북도, 1990)
『김제지방문화재지표조사보고서(金堤地方文化財地表調査報告書)』(전북대학교박물관, 1985)
『전북문화재대관(全北文化財大觀)』(전라북도, 1978)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최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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