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옥천(沃川). 자는 형숙(亨叔), 호는 퇴헌(退軒). 아버지는 참봉 전유장(全有章)이고, 어머니는 영양이씨(永陽李氏) 이휴운(李休運)의 딸이다. 장성하여 송시열(宋時烈)에게서 수학하였다.
1685년(숙종11) 유일(遺逸 : 등용되지 못한 능력있는 사람)로 천거되어 사산감역(四山監役)이 되어 곧 병절교위(秉節校尉)에 제수되었고, 1689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가 되었다가 곧 삼가현감(三嘉縣監)에 제수되고 1694년에 함창현감(咸昌縣監)을 거쳐 다음해 1695년에 의성현령(義城縣監)에 제수되었었다.
전극태는 일찍이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기에 당대의 명유(名儒)인 권상하(權尙夏)·민진원(閔鎭遠)·이재(李縡) 등과 교분이 두터웠으며, 송시열(宋時烈)이 사사(賜死)되자 전극태는 동지들을 규합하여 신원소(伸寃疏)를 재삼올리어 송시열의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저서로는 『퇴헌집(退軒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