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곡로(능원리)에 있다. 1392년(공양왕 4) 순절한 뒤 풍덕군에 묘를 썼으나, 뒤에 고향인 경북 영천으로 묘를 옮기기로 하고, 이장하던 중 그 행렬이 용인시 수지면 풍덕천리에 이르렀을 때, 앞의 명정(銘旌)이 바람에 날아가 지금 묘소의 위치에 떨어져 이곳에 안장하였다고 한다.
단분으로 묘비, 문인석 1쌍, 상석, 곡담 등은 종전의 것이 남아 전해져 왔다. 그런데 1972년 5월 기념물로 지정된 후, 같은 해 12월 종전의 상석이 지금의 것으로 교체되어, 원형이 일부 훼손되었다.
1974년 12월 곡담을 보수하면서, 장명등, 망주석, 석양, 호석, 난간석, 그리고 별도의 새로운 문인석 1쌍 등이 추가, 설치되었다. 묘비는 1517년(중종 12) 묘를 수축할 때 세운 것으로, 비에는 두 왕조를 섬기지 않은 뜻을 기리기 위해, 고려시대의 벼슬만을 쓰고 조선왕조 때 주어진 시호를 기록하지 않았다.
묘역 입구의 신도비는 1696년(숙종 22)에 건립된 것으로, 송시열이 찬(撰)하고 김수항이 글을 썼으며, 정몽주의 충절과 높은 학식에 대하여 쓰여져 있다.
정몽주는 오부학당과 향교를 세워 유학을 진흥하고 성리학의 기초를 세웠으며,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시조로까지 추대되었다.
고려 말 정도전 · 조준 등이 날로 세력이 커지는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려 하자, 이를 저지하려다가 도리어 이방원의 자객에게 1392년개성 선죽교에서 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