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수(金自粹, 1351~1413)는 안동(安東) 출신의 고려 말 문신으로 호는 상촌(桑村)이다. 이색(李穡)과 정몽주(鄭夢周)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374년(공민왕 23) 문과(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정언(正言), 성균관(成均館) 대사성(大司成) 등을 거쳐 형조판서(刑曹判書)에 올랐다. 조선이 건국하자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였다. 태조(太祖)가 대사헌(大司憲) 직을 내렸으나 응하지 않았고, 태종(太宗)이 형조판서 직을 내리자 한양으로 향하다가 무덤에 비석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광주(廣州) 추령(秋嶺, 현 분당)에서 자결하였다.
김자수 선생 묘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면 불곡산(335m) 동남쪽 지맥의 북서 사면에 자리한다. 묘역(墓域)은 골짜기 사이로 남동-북서방향으로 뻗어 내린 작은 능선 위에 조성되어 있다. 좌향은 북서향이다. 원형(圓形)의 봉분(封墳) 앞에는 1단의 계체석(階砌石)이 설치되어 있다. 계체석 아래로 상석(床石)과 향로석(香爐石), 4각 장명등(長明燈)이 세워져 있고 좌우에 석인상(石人像) 2쌍과 석양(石羊), 망주석(望柱石)이 각각 1쌍씩 배치되어 있다. 이 중 상석 좌우의 문인석(文人石)은 높이 80㎝, 폭 40㎝ 크기로 조선 초기의 것으로 여겨진다. 묘역 앞쪽의 문인석은 높이 183㎝로 금관조복(金冠朝服)을 착용한 모습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석양, 장명등, 상석 등은 근래에 세운 것이다.
김자수 선생 묘 뒤편에는 아들 김근(金根)과 며느리 우봉이씨(牛峯李氏)의 묘가 차례로 자리한다. 묘역 아래에는 땅속에 묻혀 있다가 발굴된 신도비(神道碑)가 눕혀져 있고, 그 옆에 1926년에 제작한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신도비 정면 좌측에는 순절비각(殉節碑閣)과 상촌시비(桑村詩碑)가 건립되어 있다.
김자수 선생 묘는 경기도 광주시 신현동 산120-1에 위치한다. 1987년 2월 12일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묘역(지정) 면적은 339㎡이며 경주김씨(慶州金氏) 상촌공파(桑村公派) 종중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묘역은 전반적으로 후대에 정비되어 조성 당시의 모습은 많이 남아 있지 않으나 고려 말 문신 김자수의 충절과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