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김자수 유적 ( )

고려시대사
유적
문화재
충청북도 영동군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김자수의 손자 김영년의 세거 유적.
이칭
이칭
영동김자수고가(永同金自粹古家)
유적
건립 시기
고려 후기~조선 전기
관련 국가
고려, 조선
관련 인물
김자수, 김영년
소재지
충청북도 영동군
시도지정문화재
지정기관
충청북도
종목
충청북도 시도기념물(1977년 12월 07일 지정)
소재지
충북 영동군 심천면 각계리 382번지
내용 요약

'영동김자수유적'은 충청북도 영동군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김자수의 손자 김영년의 세거(世居) 유적이다. 김자수가 고려에 대한 의리를 지켜 조선 건국 후 관직을 받았으나 거절하고 자결한 후, 김영년이 영동으로 이주하여 지내면서 후학을 양성한 곳이다. 김자수의 충절과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정의
충청북도 영동군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김자수의 손자 김영년의 세거 유적.
건립경위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 1351~1413)는 경상도 안동 출신의 고려 말 문신이다. 이색정몽주 문하에서 수학한 김자수는 1374년(공민왕 23)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정언(正言), 충청도관찰사, 성균관대사성 등을 거쳐 형조판서에 올랐다.

조선이 건국되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켜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였다. 태조가 대사헌 직을 내렸으나 응하지 않았고 태종이 형조판서 직을 내리자 한양으로 향하다가 광주(廣州) 추령(秋嶺,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자결하였다.

'영동김자수유적(永同金自粹遺蹟)'은 김자수의 손자 김영년(金永年)이 강릉판관(江陵判官)을 마치고 낙향한 뒤 거처하면서 후학을 양성한 곳이다. 김영년은 할아버지 김자수가 자결한 뒤 가문이 불안해지자 외가를 따라 영동(永同)으로 이주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로부터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각계리에 김자수 후손들이 터를 잡으면서 경주 김씨 주1가 되었다.

변천

1977년 12월 6일 경내의 선지당(先志堂) 및 정효각(旌孝閣)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되었다가 1984년 12월 31일 해제되고, '영동김자수유적'(충청북도 기념물 제41호)에 포함되었다.

형태와 특징

'영동김자수유적'은 금강 지류인 영동천에 접해 있는 충청북도 영동군 각계리 마을의 가운데에 자리한다. 남쪽으로 문을 낸 담장 안에 선지당과 후손의 정효각이 배치되어 있다. 선지당은 중종 연간 세워졌고 1816년(순조 16) 중수된 것으로 전한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주2 건물로 자연석 초석 위에 기둥을 세웠다. 정면 3칸의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 측면에 1칸의 방을 두었다. 건물 전면에는 툇마루를 두고 난간을 설치하였고 양쪽 방 아래에는 아궁이를 두었다.

대청 안쪽에는 순조 초에 후손 김노경(金魯敬, 1766~1840)이 쓴 당호(堂號)가 있으며,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장의자손(長宜子孫,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문구)’ 친필 주3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선지당 전면 좌측에 있는 정효각은 효성이 지극했던 김은 · 김추 형제를 기리기 위해 1721년(경종 원년)에 세운 것이다.

김은과 김추는 부모가 병석에 있을 때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여 연명토록 하고, 별세 후에는 묘소에 효성을 다하였다고 한다. 정효각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주4이다. 유적 출입문 정면 우측에는 1982년 건립한 ‘강릉판관 퇴헌 김선생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의의 및 평가

'영동김자수유적'은 김자수의 자결 후에 손자 김영년이 영동으로 이주하여 후학을 양성한 곳으로, 고려 왕조에 대한 의리를 지킨 김자수의 충절과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논문

신천식, 「상촌 김자수의 생애와 사상」(『인문과학연구논총』 20, 성남문화원, 1999)
이종호, 「상촌 김자수의 생애와 사상」(『안동문화』 14, 안동대학부설 안동문화연구소, 1993)

인터넷 자료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https://portal.nrich.go.kr)
영동군청(http://www.yd21.go.kr)
주석
주1

대대로 살고 있는 고장.    우리말샘

주2

위 절반은 박공지붕으로 되어 있고 아래 절반은 네모꼴로 된 지붕.    우리말샘

주3

종이, 비단, 널빤지 따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방 안이나 문 위에 걸어 놓는 액자.    우리말샘

주4

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이 용마루까지 측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이희인(인천시립박물관 학예연구관)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